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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호연 - 외부세력 vs ‘배신자 박근혜’

irene777 2016. 8. 4. 19:03



[조호연 칼럼]


외부세력 vs ‘배신자 박근혜’


- 경향신문  2016년 8월 2일 -





▲ 조호연

경향신문 논설위원



‘성주 사태’의 외부세력 개입론은 이슈의 본질과 껍데기를 뒤바꿔놓았다. 그것이 정권과 보수언론의 목표이기도 했다.


외부세력으로 지목된 40대 여성 사례를 보자. 발단은 “북핵은요, 저희하고 남쪽하고 싸우기 위한~”이라는 집회 발언이었다. 보수언론과 방송은 즉각 올가미를 씌웠다. ‘저희’라는 말은 북한을 가리키는 것으로, 북한 옹호 발언이라는 것이다. 광주, 운동권 출신에 진보정당원으로 활동한 그의 이력이 즉시 광장에 까발려졌다. ‘극렬선동녀’ ‘성주의 붉은 별’ 등의 딱지도 붙었다. 이에 경찰은 수사 방침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독려했다. 외부세력론이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대통령까지 동원돼 작동하는 이런 메커니즘은 제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확인 결과 그는 성주 정착 15년이 넘은 ‘내부세력’이었다. ‘저희’란 말은 한국이란 말을 반복한 것일 뿐이었다. 그가 시위 때 쓴 모자에 달린 별은 붉은색이 아니라 연두색이었다. 보수언론이 색깔마저 왜곡한 것이다. 성주에는 정권과 보수언론이 지목한 외부세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행정구역을 넘나들며 선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통상적 의미의 외부세력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주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주민 의견과 다르게 사드 배치를 결정한 정부, 외부세력론을 유포한 보수언론이야말로 진짜 외부세력이 아닐까.


외부세력론에는 확증편향의 음모가 어른거린다. 정권과 보수언론이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심리를 활용해 교묘하게 편견과 차별을 만들어낸 것이다. 성주 40대 여성의 사드 배치 반대는 그의 이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은 호남 출신에 진보정당 이력을 ‘전시’하며 불온한 외부세력으로 몰아갔다. 그가 사드 반대를 외치지 않았으면 이게 논란이 될 턱이 없다.


외부세력 프레임 속에서는 사드 배치 논란은 잦아들고 외부세력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성주군민도 처음에 그렇게 반응했다. 서울집회에서는 명찰을 달고 외부인 참여를 막아 ‘순수성’을 입증하려 했다. 사드 배치 반대는 성주만의 이슈로 축소됐다. 성주를 다른 지역과 시민으로부터 분리·고립시키려는 정권의 의도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권의 프레임대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성주의 반대시위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20일 가깝게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매번 수천명이 참여한다. 며칠 가다가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는 무너지고 있다. 성주군민은 문제의 핵심을 잊지 않고 있다. 해병대 출신 성주 주민 이희동씨의 말은 핵심을 찌른다. “(사드가) 우리나라를 보호한다꼬? 중국과 러시아가 왜 반대하겠심꺼? 미국 위한 기지 아잉교.”(시사인 인터뷰) 분명한 것은 성주가 유사시 우선적인 군사타격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시민은 많지 않을 터이다. 성주 유림 대표가 서울집회에서 매슬로의 ‘욕구 5단계’를 거론하며 안전을 요구한 것이 인상깊다.


대선에서 86%의 지지율로 박 대통령을 밀어준 성주군민의 배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배신의 아이콘 개누리당, 그 수장은 박근혜’라는 플래카드 문구가 이를 대변한다. ‘진박 감별사’ 최경환 의원을 비롯한 TK지역 국회의원 21명이 사실상 사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를 두고 성주를 ‘영남의 호남’으로 부르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근본적으로 성주군민의 정부 불신은 지난 3년여의 문제적 국정운영에서 비롯된다. 사전 소통과 공감 없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뒤 문제가 불거지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마지못해 인정하면서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의 행태를 성주군민도 지켜봤을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사드만 해도 오랫동안 견지해온 3노(NO) 정책을 하루아침에 번복했다. 대북 제재로 북핵 잡는다더니 이제는 반드시 사드여야 한다고 말을 바꾼다. 이런 ‘하루살이 안보정책’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성주가 최적의 장소인지, 전자파 유해성은 없는지를 정부에 따져물을 만한 자격을 성주군민은 갖고 있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시민의 합리적 우려에 정부는 진지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성주 사태는 음모와 거짓에 굴하지 않는 진실의 힘을 보여준다. 성주군민의 생각은 커지고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 반대와 한반도 평화 구호를 외친다. 지역이기주의를 넘어선 성주에 외부인들이 찾아와 연대를 표시하고 있다. 성주군민의 각오는 단단하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온다. 비가 내릴 때까지 지내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 철회 때까지 싸우겠다.” 성주는 ‘평화의 도시’를 향해 가고 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12036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