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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굿바이 차르? ‘김종인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irene777 2016. 8. 28. 02:13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91>


굿바이 차르?

‘김종인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 한겨레신문  2016년 8월 23일 -






8월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대표가 선출되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물러난다. 1월27일 중앙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지 7개월 만이다. 대선 후보가 아니면 당 대표는 물러나는 순간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다. 김종인 대표는 다를 것 같다. ‘4·13 총선 승리’라는 업적, 그리고 2017년 대선에 미칠 영향력 때문이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 의제는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 배치 문제를 놓고 ‘정체성이냐 수권정당이냐’ 논쟁을 이끌고 있다. 퇴임을 앞두고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화두를 던지며 오히려 정치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쯤 되면 물러나도 물러나는 게 아니다. 거침없는 그의 행보는 가히 ‘김종인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2012년 새누리당 총선 승리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다. 과연 김종인은 ‘총선·대선 승리의 마술사’일까. ‘김종인 현상’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지난 1월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 대표에게 당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안철수 의원과 호남 지역구 의원들, 권노갑 상임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의 탈당에 이어 박영선 의원 등 수도권 의원들의 탈당이 임박해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김종인 대표의 손에 전권을 쥐어주었다. 그는 공천과 총선 과정에서 그 권한을 마음껏 휘둘렀다.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총선 패배의 공포 때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의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최고위원회의 권한을 넘긴 뒤 잡았던 손을 놓고 연단을 내려가고 있다. 

문 대표는 이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조국 서울대 교수는 그를 ‘계몽절대군주’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제정 러시아의 황제를 의미하는 ‘차르’에 등극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조국 교수는 김종인 대표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는 면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인의 더불어민주당’은 패배를 면한 정도가 아니라 123석으로 원내 1당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뒀다.


김종인 대표는 총선 기간 내내 ‘문제는 경제야’라는 일관된 메시지로 승부했다. 선거 전술은 주효했다. 경제에 관한 메시지의 소구력은 다른 사람들이 김종인 대표를 결코 따라갈 수 없었다.


총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6월24일 김종인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브렉시트는 실상에 비해 심리적 효과가 더 크다고 했다. 충격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들은 정부보다 김종인 대표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



김종인 리더십은 

통찰과 독선의 기묘한 결합

치열한 노력의 실력파지만

리더십은 권위주의시대 한계


박근혜 통한 경제민주화에 실패

대표 퇴임 뒤 국민 상대로

경제민주화 직접 전파 뜻

개헌 고리 정계개편 나설 수도





김종인 대표의 힘은 경제와 정치에 대한 통찰력이다. 통찰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한국 사회의 ‘비주류’다. 원적이 전북 순창이다. 서울에 있는 중앙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잘나가던 사람들은 경기·서울·경복고나 지방 명문고를 거쳐 서울대를 졸업했다. 유학은 당연히 미국으로 갔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했다. 주류에는 영남 출신이 많았다. 주류는 출세에 유리하지만 패거리 의식과 편견이라는 치명적 장애가 있다. 비주류는 실력으로 존재의 가치를 입증해야 살아갈 수 있다.


김종인 대표는 끊임없이 공부를 한다. 독일과 미국의 정치인, 학자들과 지속적인 교유를 한다. 국내의 젊은 정치인, 언론인들과도 만난다. 기자로 치면 취재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통찰력은 치열한 노력에서 나온다.


그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손자다. 5·16 쿠데타 이후 김병로가 새로운 야당인 민정당(民政黨)을 창당할 때 1963년 1월부터 1년 동안 할아버지의 비서 역할을 하며 정치를 익혔다.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1964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김종인 대표의 인생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역동성을 믿는다. 젊은 시절 그의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일본에 유학을 가서 보니까 촌로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더라. 그런데 우리나라는 시골 노인들이 모여 앉으면 누구나 나라 걱정을 한다. 이런 국민들의 장래가 어찌 밝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쨌든 경제와 정치에 대한 그의 통찰력과 식견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현실주의자다. 보수와 진보로 가두기 어렵다. 두 가지만 살펴보자.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재벌해체론자도 재벌개혁론자도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거대 경제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재벌의 탐욕을 제어하자는 것이다.


“암탉이 앞마당에서 이것저것 다 쪼아 먹고 다닌다고 해서 잡아다 목을 비틀 수는 없다. 닭의 목을 비틀어버리면 알을 낳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재벌의 탐욕 문제를 국민이 직접 해결하려 하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선거 때 이를 약속한 후보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당선돼 정책으로 실천해야 한다.”


2012년에 그가 쓴 책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의 내용이다. 지난 22일 대한상공회의소 강연에서도 “경제인을 옥죄는 경제민주화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안보·외교관도 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단순히 보수 성향이기 때문에 사드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의 안보와 생존의 문제인 반면, 한-중 관계는 경제와 번영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아직까지는 전략적 우선순위가 다르다. 사드와 관련한 정부·여당의 대응은 대단히 미흡하고 실망스럽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역시 책임 있는 수권정당으로서 국익의 우선순위와 역사적 맥락을 따져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21일 기자회견)


그는 1992년 한-중 수교에서 산파 역할을 했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이다.


“개성공단 사업은 큰 의미를 지닌다. 공단 규모와 입주기업을 확대하고 북한 근로자들도 더 많이 현지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2, 제3의 개성공단 건설 사업이 필요하다. 이는 심화되고 있는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약화시키는 방법도 된다.”




▲ 김종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평민당 김대중 총재를 예방해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대표가 2012년에 공개적으로 밝힌 의견이다.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김종인 대표의 통찰력과 식견에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독선적이고 까칠한 리더십과 성격에 대해서는 질색을 한다. 그의 비서실장인 박용진 의원조차 ‘불편한 리더십’ ‘불친절한 리더십’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김종인 대표 본인은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지 친절한 게 뭐가 중요하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리더십에 대한 생각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그의 나이다. 그는 1940년생으로 76살이다.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다. 수평적 리더십의 경험이 없다. 언제나 최고권력자의 힘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김종인 대표는 서강대 교수 시절 1975년 재형저축, 1977년 의료보험 제도 도입에 기여했다. 관료들은 반대했지만 박정희 대통령과 측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69년부터 1978년까지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의 조카사위다. 1987년 개헌 과정에서는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을 넣기 위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직접 설득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할 때도 대통령의 정치적 힘을 최대한 활용했다.


김종인 대표가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이유도 바로 ‘대통령 권력’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가 목적이 아니라 집권이 목적이기 때문에 토사구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으면 2014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정권이 끝장난다고 얘기했고 박근혜 후보가 확실히 이해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고 장담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경제민주화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종인   

행복추진위 위원장이 2012년 9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총선공약 법안실천 국민

 보고’에서 나란히 서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예산당정 회의에서 “정치판에서는 

정체불명 의 경제민주화니 포퓰리즘 경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그래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그러나 김종인 대표는 대선을 치르기도 전인 2012년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사실상 결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조폭 두목’처럼 ‘부하’ 9명을 데리고 나와 그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대선이 끝나고 상당 기간 그는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패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2014년 10월 그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더는 누구 자문도 안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때 내가 너무 과욕을 부린 모양이다. 국민들에게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내가 너무 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고 사과했다.


그랬던 김종인 대표가 2016년 1월 문재인 전 대표의 비상대책위원장 제의를 받아들였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제한된 범위지만 그 안에서는 절대 권력을 쥔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권력은 휘둘러야 제맛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콘텐츠보다 스타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며 “김종인 대표는 낡고 후지다는 인상을 준다”고 혹평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2017년 대선에서 김종인 대표의 역할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 사람들 사이에 정권교체를 위해 김종인 대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경제 스피커로서의 위력이 워낙 커서 경제 주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서 다른 사람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둘째, 경세가로서 다양한 접촉으로 두터운 인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희 전략기획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것으로 검증됐다. 표의 확장성 개념에서 당에 김종인 대표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경 대변인도 “2012년 문재인 후보가 받은 48%는 양자구도에서 정치공학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최대치”라며 “경제를 맡길 만한 정치세력이라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주지 못하면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집 안에 들어와 있는 산토끼를 잡지 못하면서 무슨 산토끼를 잡으러 다닌다는 말이냐”며 “우리 당의 대선 후보는 김종인 대표와의 관계 설정이 첫번째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김한정 의원은 “김 대표는 야당이 선명성만 내세워서 대중적 기반과 지지를 잃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라며 “경륜과 노련함의 정치인이라서 그분의 생각에서 참고할 것도 많다. 당의 원로로서, 경세가로서 계속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의 기대처럼 김종인 대표가 야당의 정권교체에 기여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


첫째, 독선적이고 까칠한 리더십과 성격이 여전히 문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영표 의원은 “양극화, 일자리 등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다. 이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동력은 사회적 대화, 사회적 대타협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김종인 대표의 스타일은 독선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걱정이다.


둘째, 문재인 전 대표와의 관계 악화다. 김종인 대표는 총선 뒤 4월22일 문재인 전 대표를 만나 자신의 거취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회동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회동 이후 몇 가지 오해가 불거지며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언론에 쏟아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만나지 않고 있다.


김종인 대표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우리 당의 집권과 정권교체가 분열의 길이 되면 결코 안 된다. 집권을 위해 분열을 조장하는 것을 용인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문재인 세력의 독주 가능성에 대한 강한 경고다. 문재인 전 대표의 측근 인사는 “후보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드러낼 것이 아니라 수권정당으로 가기 위한 비전과 담론을 제시하고 견인하는 어른의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8일 오후 국회에서 ‘경제민주화가

경제활성화다’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종인 대표는 퇴임 뒤 강연 정치에 주력할 것 같다. 기자회견에서 “경제민주화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경제민주화가 이뤄졌을 때 일반 국민들의 실생활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하고 전파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종인 대표가 정치의 전면에 직접 나설 가능성이 있을까? 그는 “새누리당은 친박 일색인데 더민주도 친노가 당을 장악하면 정치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평론가가 아니라 정치인이다. 그 자신이 정계개편의 중심에 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1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제 폐지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제의한 것도 개헌을 고리로 제3세력을 구축하는 정계개편을 추진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 이럴 경우 손학규·박지원·천정배·정의화 등이 대상일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개헌 일정에 대해 “내년 12월 선출되는 19대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20대 국회의원 4년 임기에 맞춰 2020년 5월까지로 단축하고 개헌을 추진하면 된다”고 했다. 다음 대통령의 임기를 2년3개월로 줄이자는 제안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확고한 신념으로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고 개헌도 할 수 있는 차기 대통령감’이 누굴까? 아무리 봐도 김종인 대표뿐이다. 그에 대해 잘 아는 당 안팎 인사들은 “김종인 대표 자신이 나설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 한겨레신문  성한용 선임기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581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