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패여 안녕” 미련없이 외치자
- 경향신문 2016년 8월 4일 -
▲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 정치학박사
헌법재판소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한 합헌 결정을 접하면서 보츠와나 학생들이 부르는 “안녕, 안녕, 부패여 너에게 작별 인사를 전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우리에게 생소한 보츠와나는 국제투명성기구가 올초 발표한 2015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보다 아홉 계단 높은 28위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로 인정받았다. 보츠와나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 사회도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으로 ‘뿌리 깊은 청탁 관행과 고질적인 접대 문화’와 작별을 고할 수 있을까?
일전에 모 방송에서는 만일 당신이 병원 관계자인데 친한 친구가 가족이 아픈데 병실이 없다며 전화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무리해서라도 병실을 마련해주겠다는 답이 88%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혈연, 학연, 지연 등 특수한 인간관계를 바탕에 둔 연고주의와 그러한 연줄을 이용한 청탁 관행이 지속되고 있어 금품 등이 오가지 않더라도 거절하기 힘든 문화를 갖고 있다. 뿌리 깊은 청탁 관행과 함께 고질적인 접대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15년도 부패인식도 조사를 보면, 일반 국민의 40.2%, 기업인의 62.9%, 외국인의 50.0%가 공직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동기로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 관행 등’을 들었다. 당장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장차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보험 형태로 제공하는 경우가 여전한 것이 우리 사회다.
이 법은 분명 공직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이처럼 ‘부패친화적 문화’로까지 발전한 부정청탁과 접대와 같은 낡은 행태와 이별하기 위해서는 이 법과 함께 요청되는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 법의 입법 취지나 향후 과제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보다는 공무원,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 사립학교 교직원, 사학재단 임직원과 언론사 기자 및 직원이 직무관련자로부터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부조 등 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식사·선물·경조사비에 대해 각각 3·5·10만원의 상한액을 규정하는 시행령을 갖고 관련 업계의 피해를 과도하게 부각하기에 바쁠 뿐 아니라 제1, 2, 3당의 원내대표까지 한도를 올릴 것을 제안하고 나서 안타까움이 앞선다.
국회가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과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가기관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지만 시행령 한도 인상이 전부인 양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시행령 한도 인상이 아니라 ‘부패와의 작별’을 통해 청렴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발굴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원래 이름인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되찾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정부 원안에 있었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제외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되살리는 것이 골자다. ‘이해충돌 방지’ 역시 위헌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미국 의회가 1962년 케네디 행정부 시절에 제정한 ‘이해충돌방지법’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법’으로 평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의지만 있다면 헌법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김영란법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보츠와나가 중·고등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반부패를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어릴 때부터 청렴을 확고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정규수업에 포함시키도록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김영란법에서는 위법행위를 신고할 경우 보호 및 보상을 제공하지만, 특히 내부자인 경우 법에서 보장한다는 내용만 믿고 신고하기가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을 수 있기에 취업 알선 등 보다 강력한 내부신고자 보상 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기업 역시 사규나 윤리강령을 제정하거나 개정해 김영란법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며,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해 기업의 자발적 준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도 추진돼야 할 것이다. 김영란법을 근간으로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면 우리도 당당하게 ‘부패여 안녕’이라고 외치는 그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42129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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