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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상수 - 위안부, 화해·치유의 전제 조건

irene777 2016. 8. 28. 18:23



[기고]


위안부, 화해·치유의 전제 조건


- 경향신문  2016년 8월 4일 -





▲ 허상수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한국과 일본 정부의 12·28 합의에 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지원 화해치유재단이 간판을 내걸었다. 주최 측은 재단 발족 행사에 피해 할머니들을 초청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밥 먹자”고 불렀다고 말했다고 한다. 관료주의의 영혼 없는 악취가 푹푹 배어나는 모양새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역사정의의 실현이고 할머니들의 인권회복인가?


그동안 수많은 인사들이 문제점을 지적해 왔고, 젊은 대학생들이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밤새 지키면서 굴욕적 합의 철회와 폐기를 간절히 요구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요지부동 불통을 거듭해 왔다. 한국 정부가 국민들의 민족감정이나 피해 할머니들의 오랜 숙원을 팽개치고 굴욕적 타협을 저지르고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나길 원하는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가 반인륜범죄라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실을 부인하고, 역사의 불의를 용인하는 반윤리적 태도를 조금도 후퇴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일본의 우익단체와 기관은 집요하고 꾸준하게 한국 내 친일 인맥을 키우고 가꾸면서 역사망각을 획책해 왔다.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확립하는 데 장애가 된 한·일 역사 갈등을 봉합하는 데 개입했다.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밀실협상 등도 이런 3국 군사동맹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구축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패권을 장악하여 대중 견제와 압박, 대결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국제 정치역학이 작용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정치화된다. 진실이 매장되고 정의도 묻힌다.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파묻으려는 한·일 양국 권력의 야합은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망발이다. 왜냐하면 피해 할머니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양국 권력자만의 타협이고, 그들만의 불순한 결탁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인권을 다시 한번 더 유린하고,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덧내면서 할머니의 자존심과 명예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인격살인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라도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청산하면서 이행기 정의를 실현하는 지름길은 피해의 실체를 규명하고, 가해사실을 인정하는 ‘좁은 문’을 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할머니들이 당한 피해 경험을 기록하고, 당시 일본군들의 만행을 확인해야 한다. 진상조사보고서가 제출되지 않는 화해나 치유는 공허하고 막연하다. 국가기관은 평생 동안 숨죽여 살아온 할머니들이 입을 열었을 때 이를 경청하고 그 구술을 녹취하는 기초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이미 이뤄진 할머니들의 기억과 녹취기록을 국가 차원에서 확인함으로써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가해사실을 인정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권리의 주장과 요구는 결코 감정 대립을 펼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다.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 인권피해자 권리장전(반 보벤-바이오우니 원칙)에 의거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이 원칙에 따라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면 통상 관례에 입각한 피해자의 감정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의 인정과 책임의 수용을 포함한 공식적 사과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울분, 억압을 기억하고, 이를 달래줄 수 있는 진심 어린 위로와 헌사가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청춘과 생명파괴에 대한 깊은 반성과 경건한 인격존중이 앞서야 한다.


이행기 정의를 확립하고 인권을 회복하려면 진실규명과 사실인정, 책임추궁, 피해배상, 공동체 복원, 기억과 재발방지에 집중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의 이웃 나라로서 평화를 구가하며 공존하려면 과거사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화해와 치유는 이런 이행기 정의가 확립되고 피해자의 인권이 회복될 때 비로소 수반되는 것이다. 사과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 화해와 치유는 진실을 인정하고 용서할 때에만 성립될 수 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42054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