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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보협 - 대통령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irene777 2016. 8. 31. 00:06



<편집국에서>


대통령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 한겨레신문  2016년 8월 10일 -





▲ 김보협

한겨레신문  디지털 에디터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본다. 기자 밥을 제법 먹은 모양이다. 9일 새누리당의 새 대표로 선출된 이정현을 보며 옛일이 떠올랐다. 지난 세기, 연도가 1자로 시작하는 1999년 얘기다.


현재의 이정현은 박근혜 대통령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당시엔 ‘이회창 사람’이었다. 1997년과 2002년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보좌역’이었다. 정치를 포함해 사회·경제·문화 등 각종 현안에 대해 “총재님이 참고하실” 자료를 만들고 언론에 보도될 주요 회의 때 “총재님 말씀자료”를 준비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전략 기획도 하고 당 출입기자들도 만났다. 그는 “우리 총재님”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당시 보좌역이라는 직함을 가진 대여섯명 가운데 이회창과 거리가 먼 쪽에 속했다. 비주류였다. 총재님이 좋아할 대학 출신이 아니었다. ‘신라말’이 표준어인 영남당에서 고집스럽게 ‘백제말’을 썼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아 그 당의 대표까지 된 그의 무기는 열정과 충성심이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분’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퍼부어댔다. 처음엔 조근조근 해명을 하다가도 꼭 고성이 오가는 논쟁으로 끝났다. 우리는 서로를 자극할 기폭장치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쓰니까 전라도 신문이란 소리 듣는 거 아녀? 불편부당 표방하는 정론지가 그러면 안 되지”라고 언성을 높이면 나도 아껴둔 무기를 꺼냈다. “그게 광주학살 주범들이 만든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할 소리야? 개혁적인 보수정당 만들고 싶다며?” 다음날엔 언제 싸웠냐는 듯 웃으며 만나곤 했다.


항의의 강도는 이회창 총재 비판 정도와 정비례했다. 2002년 부총재 박근혜가 ‘이회창 독재’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이정현의 언사가 곱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방송>(KBS)의 세월호 보도에 대해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말폭탄’을 투하하던 통화 녹음파일이 지난 6월 공개됐을 때, 충성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이 양반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총재 보좌역이 말진 기자와 논쟁하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영방송의 보도에 시시콜콜 개입하는 것은 범법행위인데도 말이다.


듣도 보도 못한 ‘대변인 격’으로 활동하면서 ‘박근혜 사람’이 된 뒤 그가 최소한 호남 배려 차원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정도는 하겠지 했다. 그런데 불모지에서 두 번이나 지역구 의원에 당선되고 거침없이 새누리당 대표까지 꿰찼다. 그가 이번 대표 경선 과정에서 대표머슴, 섬기는 리더십을 내세웠을 땐 의도적으로 목적어를 생략한 효율적인 슬로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스로 “나를 대통령의 내시로 불러도 부인하지 않겠다”(7월9일 <조선일보> 인터뷰)거나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 대통령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9일 전당대회 후보 연설)는 대목에선 ‘정치 포르노’를 보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그랬던 그가 대표가 되어 처음 주재한 최고위원회에서 생략했던 목적어를 찾아와 섬김의 대상을 분명히 했다. 국민이란다. 서민과 소외된 이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예전에 가까웠던 이정현은 언행이 다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을 만난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말로만 국민을 섬기고 실제로는 대통령만 섬기는 대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고 섬길 대상은 뭔가 영원한 맛이 있어야지, 어느 날 사라져 버린다면 그 나머지 삶이 얼마나 허무할까.



- 한겨레신문  김보협 디지털 에디터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60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