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질 수 있는 용기를 위하여
- 한겨레신문 2016년 8월 16일 -
▲ 박구용
전남대 교수, 시민자유대학 이사장
올림픽은 세계시민의 축제다.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우며 어울릴 수 있어서다. 동질적인 하나의 세계인은 없다. 다름을 존중하는 이질적 세계시민이 있을 뿐이다. 내 편이 비키니를 걸쳐도 네 편은 히잡을 쓸 수 있다. 머지않아 내 편이 히잡을 쓸 수도 있다. 그렇지 못한 올림픽은 몹쓸 축제다.
편이 갈리니 재미가 커진다. 내 편이 앞서거나 이기길 바라며 밤을 지새운다. 이기면 기쁘지만 지면 괜스레 화난다. 마치 관음증 환자 같다. 제 손 하나 까딱 않고 남이 하는 것 보며 흥분하는 꼴이다. 자주 없는 일이니 걱정할 필요까진 없다. 하지만 제대로 즐기려면 승패에 요동치는 증상은 치료해야 한다. 그래야 도착증에 빠지지 않는다.
구경꾼만 재밌으면 싸움이지 축제가 아니다. 힘쓰고 애쓰는 선수도 함께 즐겨야 한다. 기를 쓰고 이기려고만 들면 상노동일 뿐 운동도 놀이도 아니다.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즐기려고 했다’는 박상영의 영화 같은 승리가 리우올림픽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까닭이다. 재미가 있었다니 그만큼 의미도 깊다.
올림픽은 전쟁 대신 치르는 국가 간 정쟁이 아니다. 선수들은 국가대표지만 동시에 인류의 대표다. 서로 경쟁하며 각자가 도착한 지점은 개인, 국가, 그리고 인류가 지금까지 성취한 최고점을 가리킨다. 그들이 서 있는 정점은 곧 인류의 자랑이니 합당한 명예가 주어진다. 금메달은 혼자 받는다. 하지만 그는 홀로 그 자리에 온 것은 아니다. 그는 해냈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이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난 할 수 있다.” 모두가 포기한 순간 중얼거렸던 박상영의 혼잣말이 마법의 주문처럼 번지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까지 파고들었다. <한겨레>도 ‘포기하지 않는 올림픽 정신이 아름답다’는 사설까지 내보내며 상찬했다. 자신감을 잃었거나 위기에 내몰린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어서다. 하지만 긍정의 정신을 부추기는 주문은 반복되면 될수록 실패한 사람을 단죄하는 절망의 경구가 된다. 모든 책임을 긍정 마인드가 부족하다며 개인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박상영의 주문에 빠져드는가? 포기하지 않아서일까, 승리해서일까? 둘 다 있었다. 의지가 강했고 결과까지 좋으니 감동이 증폭했다. 물론 그의 단단한 의지와 성공적 결과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 연결고리도 없다. 반복할 수 없으니 검증할 수 없고, 논증할 수 없으니 해명할 수 없는 기적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정신이 기적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 기적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에 따르면 오늘의 권력자는 옛날처럼 무시하고 억압하지 않는다. 반대로 ‘넌 할 수 있다’는 말로 창조적 에너지를 끌어내도록 담금질한다. 다 타버릴 때까지 다 뽑아 먹는다. 그러다 실패하면 언제든 그 책임을 준엄하게 묻는다. 이렇게 길들여진 현대인은 서로 짖고 으르렁거리며 캔두이즘(candoism)의 노예로 전락한다. 박태환 같은 영웅조차 이 악랄한 노예들의 밥이 되었다. 저들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용기를 내서 외쳐야 한다. “다 할 순 없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다. 같은 일도 사람과 처지에 따라 다르다. 기준과 맥락을 짚어가며 할 수 ‘있다’와 ‘없다’를 가르는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한다. 비판은 낙관적 긍정도 비관적 부정도 아니다. 비판은 무모한 자신감(긍정)과 비겁한 두려움(부정)을 극복하는 용기다. 질 수 있는 용기를 응원하는 복지국가에서만 전쟁 같은 올림픽이 그나마 신나는 축제가 될 수 있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6961.html>
'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언론의 덩치값 (0) | 2016.08.31 |
---|---|
<칼럼> 여성들이여, 브라를 벗어 던져라 (0) | 2016.08.31 |
<칼럼> 김보협 - 대통령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0) | 2016.08.31 |
<칼럼> 박민희 - ‘애국’의 경제학 (0) | 2016.08.30 |
<칼럼> 여현호 - 그런데, 우병우는? (0) | 2016.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