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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광호 - 측근에게 등을 보이지 말라

irene777 2016. 9. 9. 18:59



[아침을 열며]


측근에게 등을 보이지 말라


- 경향신문  2016년 8월 28일 -





▲ 김광호

경향신문 정치부장



어김없이 ‘때’는 오고 만다. 22년 만의 폭염도 하룻밤 비바람에 ‘훅’ 갔다. 하지만 지난여름을 유난스레 달군 ‘측근’이란 두 글자는 서늘한 바람에도 여전히 세상을 헐떡이게 하고 있다. ‘측근’과 ‘배신’은 병든 권력의 끝 무렵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신병의 시선 끝 국방부 시계처럼 정권의 시계도 이제 마지막 고개를 깔딱거리며 넘나 보다.


4·13 총선 후 만난 여권의 한 지인은 측근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탄생에 핵심이었던 만큼 권력과 소위 측근의 생리에는 나름 할 말이 있는 이였다. 그는 그 두 종류를 ‘신뢰받는 측근’과 ‘위협하는 측근’이라고 했다. 정권의 뒤로 갈수록 신뢰받는 측근보다, 권력(대통령)을 위협하는 측근의 힘이 더 세다고도 했다.


처음부터 위협하는 측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되는 측근은 없다. 그도 처음엔 신뢰받는 측근이었을 게다. 신뢰했기에 권력은 그를 감쌌고, 내밀하고 예민한 부분까지 의지했을 터다. 신뢰 속에 자신감이 커지는 만큼 조심스러움은 사라져갔을 것이다. 권력의 누추한 뒷모습을 봤기에 처음의 두려움도 옅어졌을 터다. 때로 슬그머니 스스로 권력이란 생각도 했을 법하다. 신뢰받던 측근은 그렇게 점점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로 변했고, 간밤 비바람처럼 어느 한순간 ‘훅’ 위협하는 측근이 됐을 것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논란을 바라보는 민심의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왜’라는 당혹감이다. ‘정권 호위무사’라는 평가만으로 이해되지 않는 우 수석의 버티기와 청와대의 감싸기에 대한 당혹스러움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 ‘99%’까지 요구하는 사퇴를 버텨내는 우 수석의 끈기(?)와 그런 그를 보호하기 위해 한때 정권의 ‘호위 아이콘’이던 보수언론과 ‘일전 불사’하는 청와대의 용기(?)에 지지층마저 당황하고 경악스러운 표정이다.


“지역구에 가면 아주 난리다. 당원들이 묻는다. ‘우병우 세상이라는데 맞느냐’ ‘우병우가 의원님보다 그렇게 세냐’고 한다.”


새누리당 한 의원의 전언이다. 청와대가 이처럼 철저하고도 단호하게, 비상식적으로 여론을 외면하면서 지지층에서조차 탄식이 나온다. ‘靑瓦臺(청와대)가 아니라 靑蛙(청개구리)臺’라는 탄식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으로서는 뭔가 이 사람을 내칠 수 없는 약점이 있다”(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는 음모론식 ‘약점설’도 나돈다. 결국 우 수석은 임기 끝으로 갈수록 힘이 세지는 위협하는 측근이었던 것인가.


신뢰와 위협의 조건은 유능하냐, 아니냐일 것이다. 여전히 유능한 측근이라면 신뢰 이유가 조금은 해명이 된다.


우 수석 처가 부동산 문제로 시작된 도덕성 의혹은 ‘몰래 변론’, 아들의 ‘의경 특혜 근무’ 등으로 줄줄이 번져 있다. 공직부패사에 한 획을 그은 진경준 전 검사장 문제부터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선 장관 후보자들까지 민정수석의 업무 본령인 인사 검증에서도 우 수석은 낙제점에 가깝다. 수신(修身)이나 제가(齊家) 면에서도, 나랏일 면에서도 어느 하나 유능하다 할 만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8·15 대통령 경축사에 어이없이 등장한 ‘하얼빈’ 논란처럼 청와대 전체가 ‘총체적 무능’의 질병을 앓고 있으니 우 수석의 무능은 무능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최악은 무능하면서 탐욕스러운 경우다. 거기에 성실하지조차 않다면 그 재앙은 헤아릴 길이 없다. 그 대가는 누군가, 결국 국민들이 받아야 한다. 지난해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無道)하다’는 뜻이다.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혼군)와 용렬한, 즉 무능한 군주(용군)를 함께 이른 게 혼용이다. 출범 이후 비선 논란부터 세월호, 메르스 대응까지 박근혜 정부의 끝도 없는 무능을 일갈한 것이었다.


결국 ‘위협하는 측근’은 혼용한 군주가 만든다. 민심을 얻지 못하고 괴리된 약한 권력은 측근에게도 약점 잡힌 만만한 권력이 되기 십상이다. 수백년 ‘궁중 내시 암투사’가 보여주듯 권력과 측근의 힘은 반비례다. 권력이 얼룩을 보일 때 측근들은 발호한다.


측근일수록, 신뢰할수록 권력은 등을 보이지 마라. 누추하고 예민한 부분을 의지하지 마라. 그 순간 위협하는 측근이 된다. 측근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우 수석을 신뢰한다면 지금 할 일은 그가 자연인 상태에서 결백을 증명하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이를 통해 청와대의 유능도 입증해야 한다. 제갈공명은 분신과도 같던 마속을 베었고, 체사르 보르자는 자신의 대리인 레미로 데 오르코를 ‘우아하고도 냉혹하게’ 처형했다(시오노 나나미 <우아한 냉혹>). 정치가 세상과 불화하면 세상이 불행해진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282046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