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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병호 - 일본군 ‘위안부’ 재단, 일본에 세워라

irene777 2016. 9. 14. 01:43



[시론]


일본군 ‘위안부’ 재단, 일본에 세워라


- 경향신문  2016년 8월 24일 -





▲ 정병호

한양대 교수 (문화인류학)



‘화해와 치유’ 재단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의 돈을 받아,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사업을 한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겠다고 나선 것인지 이상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


‘화해’란 가해자가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진심으로 약속하고, 다음 세대도 되풀이하지 않도록 단단히 교육하면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일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일본 사회에 충고한 대로 사죄는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해야 할 일이다. ‘화해’를 위한 노력은 우선 일본 사회에서 시작할 일이다.


‘치유’를 하려면 상처부터 알아야 한다. 이미 저질러진 잘못은 돌이킬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전장에 끌려가 고난을 당하고 죽어간 수많은 여성들은 되살리지 못한다. 그 영혼들은 어떻게 치유하나? 어린 딸을 기다리다 보지 못하고 눈감은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하나?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사는 수많은 할머니들의 말 못할 아픔은 어떻게 치유하나?


‘화해와 치유’ 재단은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 그동안 이름을 밝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265명과 그 가족들에게 주기로 했다고 한다. 생존자 40명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해결하겠다고, 시간이 없다고 서두른다. 지난 25년간 일본 대사관 앞에 서서 진지한 사과 한번 못 받고 무시당하면서 수요시위를 계속해 온 할머니들 대다수가 이미 돌아가신 지금, 그 돈으로 ‘치유’를 하겠다고 나선 한국 정부의 무지와 무감각이 놀라울 뿐이다.


폭염과 혹한, 비바람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주장해 온 할머니들을 보상금을 바라고 떼쓰는 노인들로 폄하해 온 일본 우익들의 생각과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일본에는 ‘부끄러움’을 감추고, 지우고, 씻어서 ‘명예’를 지키려고 하는 ‘수치문화’의 논리가 있다.


혹시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 외교관들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제는 정리하고 치워두어야 할 ‘수치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나? 그래서 일본 총리의 뜻대로 소녀상도 치우기 위해 노력하고 다시는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거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나?


한국의 ‘저항문화’는 진실을 밝힌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 할머니들은 이미 스스로를 치유하고, 또 전쟁범죄로 상처받은 여성과 인류를 치유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진정한 ‘화해’를 위해 필요한 일은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다. 다시는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추모하고, 교육하는 일은 먼저 일본 사회에서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에게 철저히 하여야 할 것이다.


독일에는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이 있다. 나치의 강제노동으로 이익을 얻은 독일기업들(폭스바겐, 벤츠, 지멘스, 알리안츠 등)과 독일 정부가 각각 약 3조원씩 출연한 총 6조원 상당의 기금으로 만든 재단이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강제노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보상하기 위해 설립된 이 재단은 희생자들에게 보상하고 남은 돈으로 다시는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독일 국민들, 특히 미래 세대들을 교육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고작 100억여원의 돈을 받아서 ‘화해와 치유’ 재단을 설립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 시민사회는 ‘화해와 치유’를 위한 자발적 노력을 하고 있었다. 원한을 넘어 화해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소녀상’, ‘평화나비’, ‘평화디딤돌’,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등 수많은 평화 상징물을 세우고, 인권평화교육을 폭넓게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가 노력할 차례다. 일본 각지에 과거의 전쟁범죄와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상징물들을 세우고, 일본의 다음 세대가 희생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화해’를 위한 노력은 일본 정부가 일본에서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빠져라.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242054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