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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희연 - 분노사회와 ‘압축성숙’

irene777 2016. 9. 14. 02:30



[기고]


분노사회와 ‘압축성숙’


- 경향신문  2016년 8월 15일 -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나는 요즘 우리 사회가 ‘분노사회’라는 생각을 한다. 현실에 대한 울분과 분노가 사회공동체의 저변에 쌓여 있고 그 울분과 분노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표현되는 사회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이러한 분노사회적 특성은 단지 한국만의 특성은 아닐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상대적 안정기를 구가하던 자본주의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양극화와 고용불안 등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그것이 지구촌의 모든 사회를 구조적 불안정 속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회는 일정하게 분노사회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은 세계화의 주도국가라고 하는 미국에서마저 트럼프 현상이나 샌더스 현상을 낳을 정도로 깊고 넓으며 보편적이다. 구조적으로는 한국에서도 고도성장기의 상대적 안정이 해체되고 1998년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속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청년실업이 10%를 넘을 정도로 사회경제적 불안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우리의 고도성장이 불평등 유발적, 혹은 분노 유발적 성격을 띠고 전개됐기 때문에도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이러한 분노사회적 특성은 단지 구조적 위기에 따라 사회심리적 불안정이 확대됐다는 것으로만 특징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분노사회의 또 다른 특성은 계기적 사건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서 주어진다. 분노의 현실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단지 순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 권력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적극적 분노이자 집단연대적 분노로 표현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최근 나타난 사건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지난 5월 일어난 강남역 사건이 그러하다. 이 사건이 단순한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치부되어 넘어가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약자로서의 여성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겨운 것인가에 대한 공감과 연대, 그러한 현실에 대한 분노로 표현됐다. 뒤이어 발생한 구의역 사건 역시 우리 사회 분노의 현실과 분노의 정조가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사건은 열아홉 살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비정규직 기간제 청년이,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죽음의 작업에 투입되게 했던 현실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강남역과 구의역 사고 현장과 출입구에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고인을 추모했다. 이것이 이전의 분노와는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분노사회라는 조건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성찰적인, 그러면서도 전향적인 개혁으로 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의역과 강남역 주변을 뒤덮은 포스트잇을 보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고 할 때, 과연 ‘압축성숙’은 불가능한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난해부터 계속 유행해온 ‘헬조선’과 ‘엔포세대’ 등 우리 사회의 작동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의 시각을 담고 있는 담론이 유행하면서, 이런 사회적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공감의 감수성 지수가 매우 높아졌음을 느낀다. 시민들은 한결같이 “지켜주지 못해” 아파하고,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느냐”며 분노하고 있다. 이것이 분노사회의 한 단면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발생한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고 하는 발언에 대한 반응도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것은 그 발언이 분노하는 현실을 운영하는 엘리트의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 보수적 교육관료의 엘리트주의적 편견이거나 취중 실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 현실 그 자체에 대한 분노를 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사회적 현상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성숙하게 대응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중에게 분노의 절제를 요구하거나 이전에 소극적 분노사회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고,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분노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현실에 대한 보다 과감한 대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인식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사회가 분노사회로 작동한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가 공동체로서 해체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사적인 사안에 대한 잦은 분노의 표현은 인격의 미숙성을 보여주는 일이겠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분노는 사회를 성숙시킨다. 나는 이 사회적 분노가 ‘압축성숙’을 통해 우리 사회의 품격이 더욱 높아지고 살 만한 사회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52104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