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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손혁 - ‘회계 투명성 높은 사회’ 여는 김영란법

irene777 2016. 9. 14. 02:53



[기고]


‘회계 투명성 높은 사회’ 여는 김영란법


- 경향신문  2016년 8월 29일 -





▲ 손혁

계명대 회계학과 교수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즉 ‘김영란법’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 법조계 등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심지어 기업이나 관공서는 ‘김영란법’ 대처 방안을 알아보느라 로펌들만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식사 대접을 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세계에도 수요자와 공급자가 존재한다. 수급자가 만나서 균형가격과 거래량이 결정되는 시장경제에서 김영란법은 최고가격제처럼 작용한다. 김영란법에서는 이를 5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과거 구소련 등 공산국가의 경우 생필품가격을 값싸게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생필품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낮게 책정했다. 이 경우 수요자는 제값을 주고 생필품을 사지 않으므로 과다한 소비를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급자는 팔아도 이윤이 남지 않으므로 공급을 굳이 늘릴 필요가 없게 된다. 따라서 실제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는 긴 줄을 섰으며, 훨씬 비싼 값에 생필품이 거래되는 암시장이 형성됐다.


김영란법이 최고가격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식사 접대나 선물을 주려는 측은 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줄 필요가 없을 것이고, 받으려는 측은 정상적인 접대가 아니라 더 은밀한 방법으로 받고자 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가져다주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는 음미할 가치가 있다.


첫째, 김영란법이 우리나라에서 3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다. 김영란법의 합헌 결정으로 경제성장률이 감소하고 소비가 쇠퇴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투명성이 높은 북유럽 등 선진국에서 김영란법과 유사한 법이 통과됐다고 경제성장률이 후퇴할까?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비정상적인 접대문화가 3차 산업에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성장으로 현재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앞두고 있다. 국민소득 자체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수치지만, 이러한 높은 국민소득은 비정상적인 접대로 인한 서비스산업이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다. 강남의 접대 술집이 장사가 안되면 주변 음식점, 사우나, 미용실, 운송업 등 다양한 분야가 파급효과를 맞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김영란법은 접대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배어 있으며 처음으로 기업과 대중에게 문제점을 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특히 회계투명성 지수가 세계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에서 김영란법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즉 김영란법의 통과만으로도 투명성지수와 부패지수가 개선됐다는 신호를 전달해 사회적 효용을 증가시킨다.


둘째, 김영란법은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걸리버가 소인국 릴리파트의 법은 대부분 상을 주는데, 왜 영국의 사법제도는 규제만 가하는 것인지 비판하고 있다. 최근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을 최선으로 유도하기 위한 각종 유인책이 연구대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영란법과 같은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선물이나 향응을 제공받지도, 제공하지도 않도록 하게끔 하는 다양한 유인책의 설계를 정책 입안 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접대관념의 변화이다. 우리나라는 갑과 을이 만나면 을이 접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심지어 접대의 품질에 따라 평가와 의사결정을 수행해 왔다. 김영란법을 계기로 이제는 ‘접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력을 어떻게 보여줄지’ 노력하는 방식으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접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줄어들고 지하경제는 양성화되며 보다 회계 투명성이 높은 사회가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292028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