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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현호 - ‘썩은 사과’는 햇빛 아래서 가려야

irene777 2016. 9. 28. 16:57



<아침 햇발>


‘썩은 사과’는 햇빛 아래서 가려야


- 한겨레신문  2016년 96일 -





▲ 여현호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어어 하다 보니 어느새 이 지경이다. 김수천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뇌물수수 사건은 그간의 법조비리와는 그 심각성이 사뭇 다르다. 의정부 법조비리(1997)나 대전 법조비리(1999)는 명절 떡값이나 사건 소개비 등으로 기백만원씩을 돌린 혐의였다. 김홍수 게이트(2006)와 사채왕 판사 사건(2015) 등은 다른 사람이 맡은 사건의 선처를 청탁받은 경우다. 손가락질받을 범죄이긴 매한가지이지만, 당사자들로선 최소한의 변명은 가능했을 것이다. 대접은 받았어도, 혹은 ‘뒷돈’을 받고 말로 거들긴 했어도 ‘안 될 일을 되게 하진 않았다’고 애써 자위했을 법하다.


이번엔 그런 자위가 불가능하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1억7천여만원을 받았다는 김 부장판사는 자신이 맡은 재판에서 정 대표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이들에게 1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뒷돈만 받은 게 아니라 뒷돈을 받고 판결 주문을 바꾼 셈이다. 법관이 재판에선 직업적 양심을 지킬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는 이로써 무너졌다. 판결이 돈에 좌우된다는 사법 불신은 생생한 사례로 더욱 굳어지게 됐다.


그 잘못을 개인 탓으로만 돌려선 안 된다. 김 부장판사에 대한 구설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처신과 언행이 ‘위험해 보인다’는 평이 있었다. 하지만, 그만 그랬을까. 이삼십년 전엔 변호사가 판사실로 찾아와 ‘밥값’을 놓고 가는 관행이 있었다. 박봉인 그 시절의 젊은 판사들이 골프를 치고 비싼 술집에 드나든 것도 ‘외부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그 외부인 가운데 사건화된 전관 변호사와 법조 브로커가 있다. 그런 잘못된 관행은 급격히 사라지고 차단됐지만, 그늘에서 몰래 이어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썩은 사과’는 쉽게 드러나지도 않지만 결코 혼자 썩지도 않는 법이다. 김 부장판사가 ‘사소한’ 특혜나 대접에 그치지 않고 명백한 불법까지 저지른 것은, 작은 특혜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변’이 경계감을 마비시킨 탓일 수 있다.


비리 법관을 상자 속의 ‘썩은 사과’처럼 들어내 치우는 데만 급급했던 법원의 책임도 있다. 이런저런 법관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사법부는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서둘러 사건을 종결지었다. 법관은 헌법에 따라 해임과 파면이 불가능하고 징계도 정직 1년이 상한이니 아예 법원에서 내보내는 게 더 큰 징벌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일 수 있지만, 그 탓에 비리를 그때마다 ‘일벌백계’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게 퇴출당한다고 해서 변호사를 영영 못하는 것도 아니니 치명적인 처벌도 아니다. 그 누적의 결과가 소도둑처럼 커진 이번 사건일 수 있다.


법관 수가 3천명에 육박하고, 세상사에 젖을 수밖에 없는 변호사 가운데 법관을 뽑게 되는 지금은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법관의 비리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일이 터질 때마다 쉬쉬하며 격리에 급급할 게 아니라, ‘썩은 사과’를 상시로 감시하고 가려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대법원장이 말한 “고귀한 명예의식과 직업윤리에 관한 굳은 내부적 결속”만으로는 비리를 없앨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자체 정화의 한계가 드러난 마당에 외부 감시의 제도화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비리가 겁난다고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하고 아예 문을 잠그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소통과 공감을 통해 재판의 신뢰를 높이는 것은 법원으로선 비리 대책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요컨대, 투명하게 소통하고 투명하게 감시받으면 된다. 결의와 다짐으로 될 일은 결코 아니다.



- 한겨레신문  여현호 논설위원 -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02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