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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창록 - 북한인권법, 압박 수단으로만 써서는 안돼

irene777 2016. 10. 17. 12:41



[시론]


북한인권법, 압박 수단으로만 써서는 안돼


- 경향신문  2016년 9월 19일 -





▲ 서창록

고려대 교수,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



북한인권법 시행에 따른 북한인권재단의 출범이 목전에 와 있다. 북한인권법은 2005년 발의된 이후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상호 전향적인 자세로 합의를 이루어 지난 9월4일 발효됐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인권 개선, 남북관계의 발전, 한반도 평화 정착의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천명하며, 자유권과 생존권을 불가분의 인권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방안을 규정해 특정 정치적 입장에 편향되지 않은 법으로 만들어졌다. 북한의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규범을 어긴 행위로 규탄을 받아 마땅하고 그에 대한 강경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굳건한 안보를 위해 군사적인 조치를 포함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핵문제와 인권 문제를 연계해 북한 주민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원래의 목적을 도외시하고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한다면 어렵게 만들어진 북한인권법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제적 협력, 인도적 지원 등 북한인권법이 제시한 많은 방안들이 북한의 최소한의 협조가 없는 현 상황에서는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고조된 국제관계의 긴장상태, 그리고 체제 결속을 위해 강화된 내부통제를 생각할 때 북한의 협조를 당장 쉽게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인권침해를 주도한 가해자들의 범죄행위들을 기록하고 보존함으로써 국제형사재판소 제소나 통일 후 법원에 제출할 근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 북한인권기록센터의 설립이 현재로서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과거 통일 전 서독이 중앙문서기록보관소를 운영한 것과 같이 인권침해 행위를 지속적으로 기록, 보존하면 인권침해자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고 북한 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인권기록센터의 운영이 현재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해도 현실적 장벽 속에 갇혀 있기보다는 이를 넘어서기 위한 다차원적인 시도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 가까운 장래에 아시아의 비민주국가들에 대한 인권외교와 북한 인권 증진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할 때 지금의 북한 인권 증진 활동은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협력을 통해 인권 증진을 용이하게 만드는 접근방식을 유연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자유권 증진이 중요한 목표일지라도 경제권, 사회권, 문화권도 마찬가지로 중요함을 고려해 이러한 분야의 인권 증진을 이루는 대화와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인권침해 문제가 국가권력으로부터 북한 주민들의 생명과 자유가 위협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본적인 생존에 관계되는 식량, 보건, 주거는 물론 교육, 노동 등 광범한 영역에 걸쳐 존재하므로 우리 정부가 다양한 정책방향과 실행방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내고 뜻을 모아야 한다.


또 우리 정부, 국민, 시민단체만이 대화와 지원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북한의 비협조적 태도를 완화할 수 있는 유연하고 효과적인 방식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이 유럽 내 대학들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의 문을 북한과 이란 등 인권침해와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유엔의 제재를 받는 국가들에도 열어놓았는데 우리가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일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북한의 내부적인 변화를 위한 초석을 놓으며 우리가 대화와 지원을 통한 북한 인권 증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 주민들과 전 세계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가 핵문제와 더불어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하고 북한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남북관계를 진척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생각해야 하며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을 이루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단지 손안에 있는 제한된 수단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인권 증진, 남북 협력, 평화 정착의 보다 더 큰 틀 속에서 북한인권법의 근본 취지에 부합하는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 나가야 하겠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192056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