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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익중 - 원전 안전 ‘처방’보다 ‘진단’이 먼저다

irene777 2016. 10. 18. 12:58



[시론]


원전 안전 ‘처방’보다 ‘진단’이 먼저다


- 경향신문  2016년 9월 21일 -





▲ 김익중

동국대의대 교수



지난 12일 경주에 규모 5.1과 5.8의 지진이 연달아 발생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19일 규모 4.5의 여진이 비슷한 장소에서 발생했다. 경주 시민들 대부분은 탁자 위에 있던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고, 몇몇 지역에서는 벽이 무너지거나 지붕의 기와가 땅으로 떨어지는 등의 피해가 있었다. 다보탑과 첨성대도 지진에 의한 손상을 입었다. 지진 이후 현재까지 400회가 넘는 여진이 있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여진이 올 수 있다는 소식에 경주시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경주는 인근에 원전이 6기나 있고 방폐장이 있는 곳이다. 원전의 안전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후 우리 정부는 “일본과 우리는 다르다. 일본과 같은 강진은 오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다고 강변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은 이런 생각이 틀렸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관측 이후 현재까지 강한 여진이 연달아 발생했다. 앞으로 더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대부분 진도 6.5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건설 당시 그렇게 평가됐다 하더라도 과연 30년 정도 지난 원전들이 현재까지도 그 정도의 내진 성능을 갖고 있을 것인지, 우리나라에서 6.5 이상의 지진이 올 확률은 아예 없는 것인지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다.


그동안 지진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나 논쟁을 들어본 결과, 필자는 지진은 정말로 예측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전문가들의 주장이 너무나 엇갈렸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에 대한 얘기도 마찬가지다.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어느 단층에서 발생했는지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양산단층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전문가는 근처의 다른 단층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앞으로 7.0 이상의 지진이 올 수 있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6.0 이상은 오기 힘들다고 말한다. 지진 전문가들의 이야기들은 도무지 공통분모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를 두고 벌어지는 심각한 논쟁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경주 지진의 진앙에 관한 치열한 논쟁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진앙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길이의 양산단층에서 발생했다면 앞으로 더 큰 지진이 올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단층의 길이가 길수록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지진에 대한 원전의 안전성 평가는 객관적 근거를 갖고 과학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이 단층지도를 작성해야 한다. 전 국토에 대한 단층지도가 작성돼 있다면 이번 지진의 진앙에 관한 비생산적인 논쟁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둘째, 국내 모든 원전들이 어느 정도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이를 스트레스 테스트라고 부르는데,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유럽의 모든 원전은 지진, 홍수, 태풍 등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한 것이다.


이 모든 항목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가 어렵다고 해도 지진에 대한 테스트만큼은 반드시 전 원전을 대상으로 실시해야 한다. 단, 이 테스트가 외부 전문가들도 인정할 수 있도록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실시돼야 한다. 우리 정부는 수명연장을 실시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 테스트의 신뢰성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고, 이 논란들은 끝내 해결되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지진에 관한 스트레스 테스트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곤란하다. 테스트 과정에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관련 자료는 전부 투명하게 공개해 누가 봐도 의혹이 없도록 실시돼야 한다. 정부는 이미 원전의 내진설계를 7.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는 진단도 하기 전에 처방을 내는 모양새이다. 우리나라 원전이 어느 정도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먼저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212049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