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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황평우 - 경주 문화유적, 지진 대처 신중해야

irene777 2016. 10. 20. 13:13



[시론]


경주 문화유적, 지진 대처 신중해야


- 경향신문  2016년 9월 22일 -





▲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계속되는 여진에 진동 트라우마가 생긴 경주의 친구에게 거듭 미안하지만, 이번 경주 지진을 대하면서 하늘에 고맙다는 말 이외에 할 말이 없다. 일부 언론에서 문화재가 무너진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수화기 너머 경주 친구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담대했다. 우리는 규모 5.8에 비해 재산상 피해나 문화재 피해가 이 정도인 것에 대해 “하늘과 조상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마치 원시부족이 큰일을 치르기 전후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상상을 했다.


이미 역사기록에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은 삼국사기의 탈해이사금 8년(기원후 64년) 12월 지진을 시작으로 ‘혜공왕(惠恭王) 15년(779년) 3월에는 지진이 일어나, 백성들의 집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100여 명이었다(현재 기준으로 규모 7.0)’라는 기록을 포함해서 48회 정도다.


경주에 다시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불국사를 떠올렸다. 불국사 축대를 보면 우리 선조들은 돌을 가공해서 쌓을 때 돌이 생긴 그대로의 모양과 성질을 이용해서 토목공사를 했다. 위아래 좌우 진동이 발생했을 때 흔들리다가 제자리로 털썩 가서 안정되게 있는 방식! 바로 ‘그랭이’ 기법이다. 전 세계 건축물에서 땅의 표면과 지상의 기둥을 견고하게 고정하지 않는 건축기법은 어디 있을까? 바로 우리네 집의 구조이다. 한옥은 주춧돌과 기둥을 그 어떤 접착제로 고정하지 않는다. 이래도 견딘다. 움직이며 견뎌내는 것이다. 바로 이 방식이 시공간을 넘어온 우리의 내진설계가 아닐까 한다. 첨성대 내부도 돌을 채웠고 밑이 넓어 흔들려도 오뚝이처럼 바로 서게 된다. 이러한 점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경주지역 문화재 97건에 대해 지진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첨성대의 윗부분이 수㎝ 이동했고, 다보탑은 일제가 시멘트로 보수한 부분이 떨어졌다. 나머지 피해는 주로 지붕과 담장 기와 탈락, 벽체 균열 등이 대부분인 것으로 발표했다.


한옥 지붕의 기와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 부분도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 있다. 현재 올라가 있는 기와는 현대적으로 만든 기와인데 옛 방식의 기와보다 밀도 면에서 무겁다. 옛 기와보다 무거운 것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고 지진으로 진동이 있으니 가벼울 때보다 더 빨리 떨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옥을 지으면서 무게를 고려하지 않은 현대식 기와가 올라갔을 때 진동이 나면 무너지고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이런 고민도 해보면서 원인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자연재해를 막아낼 장사는 없다. 그러나 여러 역사기록을 보면서 어느 정도 대비는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재난에 대비하거나 재난이 닥쳤을 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매뉴얼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맞춤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지진에 대비하는 우리의 매뉴얼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본다. 재난에 냉정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일부 언론은 호들갑만 떨고 있다. 심지어 첨성대를 해체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또 재난지역 선포로 많은 피해복구 자금 투입이 예상되자 이 자금을 흡혈하려는 정치꾼과 토건세력들 같은 불순세력들이 벌써 언론을 앞세워 냉정한 보도보다는 연일 이성을 잃은 자극적인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단언컨대 첨성대와 다보탑은 지금 당장 무너지지 않는다. 더구나 불순세력의 부추김에 부화뇌동 해체하는, 지진보다 더 난폭한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냉정하게 관찰하고 관련 전문가들이 충분히 검토하게 그냥 두기 바란다. 그 이후에 보수방안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 지금 첨성대를 해체하면 우리는 영원히 첨성대를 잃게 될 것이다.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지금도 첨성대 옆을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과 진동만큼이나 시끄럽다. 사랑하는 경주 친구야! 우리 반구대 제단에 가서 하늘에 죄송하다고 빌어나 보자. 부디 건강해라!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222049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