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칼럼> 백년을 살자하니

irene777 2016. 10. 24. 14:43



백년을 살자하니


진실의길  정운현 칼럼


- 2016년 10월 6일 -




며칠 전 시내 서점에 들렀다가 선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독파했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펴낸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이다. 김 교수는 올해 97세로 100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강연과 집필 등 현역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만하면 건강도 좋은데다 그 연세에도 할 일이 있다는 건 축복임이 분명하다.


6, 70이 넘은 세대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김 교수는 왕년에 베스트셀러 문필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등으로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널리 사랑받았다. 수필가 피천득의 <인연>,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흙속에 저 바람 속에> 등과 함께 쌍벽을 이뤘다고나 할까




      ▲ 김형석 교수                      ▲ <백년을 살아보니> 표지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은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라고 쓴 부분이었다. 처음엔 쉽게 동의가 되지 않았다. 뭔가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필자 자신이 연세가 있는 분이어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될 법도 했다. 60 이전에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회인으로, 직장인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게 보통이다.


혹자는 ‘은퇴 후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도 출근하지 않으니 바쁠 일 없고, 주어진 하루 일과가 없으니 서두를 것 없고, 게다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그야말로 ‘나만의 삶’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자면 김 교수가 60~75세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한 것은 타당해 보인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아직은 건강도 괜찮은데다 인간관계나 경제적인 문제만 없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그런데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100세 시대를 운운하는 보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지만 정작 노인을 주제로 쓴 기사들은 부정적인 내용뿐이다. 노인자살률 1위, 폐지 줍는 노인, 갈수록 어려워지는 노인취업, 노인범죄, 노후문제 등등. 100세 시대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고된 종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정과 사회로부터의 방기, 건강과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노후생활은 결코 반길 일만은 아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자살이 바로 그 증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고령자 통계’ 자료를 보면, 55세 이상 고령층 인구 10명 가운데 6명은 “앞으로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을 원하는 주된 이유는 ‘생활비 보탬’(58%)이었다. 그밖에 ‘일하는 즐거움’(34.9%), ‘무료해서’(3.4%), ‘사회가 필요로 함’(2.2%) 등의 이유도 있지만 핵심은 돈 문제다. 노후의 생계비 걱정 때문에 은퇴 이후에도 일손을 놓지 못하는 셈이다.


<백년을 살아보니> 책에는 ‘늙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는 대목이 나온다. 말 그대로 늙는다는 것은 자연현상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 중에서 늙지(시들지) 않는 것은 없다. ‘젊어서는 용기, 늙어서는 지혜’를, 그리고 ‘취미생활의 즐거움’을 누리고 ‘노년기에는 존경스러운 모범을’ 보이자면 심신의 건강과 경제적인 문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백년을 살자하니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인 세상이 돼버렸다.



<출처 :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table=wh_jung&uid=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