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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편지> ‘똥별’과 ‘대똥별’

irene777 2014. 11. 20. 02:06



‘똥별’과 ‘대똥별’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79


- 한겨레신문  2014년 10월 28일 -




▲ 곽병찬 대기자



정치·승진에만 혈안인 ‘똥별들’보다 문제는 군 통수권자

전시작전권 포기, 대통령 스스로 태만·무능력 고백한 것




▲ 23일 미국 워싱턴의 펜타곤에서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왼쪽)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하는 협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환호와 야유를 달고 다녔습니다. 그런 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2006년 12월21일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했던 ‘전시작전통제권’(전시작전권)과 관련한 말입니다.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노? 나도 군대 갔다 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았는데, 심심하면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는데 그 위의 사람들 뭐 했어.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 내고, 자기들 직무 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고.”


이 말을 할 당시 미군에 주어져 있는 전시작전권을 50여년 만에 환수하기로 한 데 대해 이 나라의 ‘별’들은 연일 시위를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그런 ‘똥별’들을 한층 더 자극했습니다. 저희들 잘못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속으론 움찔했겠지만, 이를 감추기 위해서도 더 열심히 반정부 시위에 나섰죠. 이른바 군 원로들은 긴급 회동을 갖고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 성명에는 전직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전직 군 수뇌 70여명이 동참했습니다. 맨 앞자리에 있던 ‘똥별’ 중의 ‘똥별’이 예비역 중장 유재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군번 3번인 사람입니다.


유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거론됐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똥별’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자들만 골라서 중용했던 대통령들의 ‘싼 똥 뭉개는’ 군 통수권 행사를 따지기 위해서 거론하는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유씨는 일본 육사 출신으로 6·25 전쟁 중 전장에서마다 ‘역사적 참패’를 기록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전시작전권 환수에 게거품을 문 이유는,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군을 말아먹은 게 전시작전권 이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 그가 지휘하던 부대들은 하나같이 궤멸적 참패를 한 뒤 모두 해체됐습니다. 그런 자를 대통령 이승만은 패전할 때마다 승진시켰습니다. 그를 보직 해임한 것은 보다 못한 밴플리트 유엔군 사령관이었습니다.




▲ 유재흥 예비역 육군중장



유재흥이 6·25 개전 초 지휘하던 부대는 의정부의 7사단이었습니다. 이 부대는 경계 실패와 작전 실패로 곧 궤멸했고, 전선은 순식간에 뚫려 북한군은 개전 단 사흘 만에 서울을 함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를 2군단 군단장으로 승진시킵니다. 그해 11월 2군단 예하 3개 사단은 중공군의 포위 작전에 말려들어 다시 순식간에 궤멸합니다. 덕천전투에서의 참패로 연합군은 진격을 포기하고, 끝없는 후퇴 끝에 이듬해 1월 다시 서울을 내주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2군단이 해체됐는데, 이승만은 유재흥을 다시 3군단장에 보임합니다. 그러나 3군단은 강원도 인제 현리전투에서 싸움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풍비박산이 납니다. 한국전사 중 최악이었던 현리전투였습니다. 서부전선이 교착되자, 중공군은 동부전선의 인제 쪽을 돌파하여 서부전선을 배후에서 치기로 합니다. 중공군은 이를 위해 인제에 주둔하던 한국군 3군단의 보급로이자 퇴로이던 오마치고개를 점령합니다. 점령하고 있던 것은 중공군 단 1개 대대 병력이었습니다. 그러자 9사단장이던 최석을 비롯한 상당수 고위 장교들이 계급장을 떼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군단장 유재흥은 작전 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분으로 정찰기를 타고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지휘관을 잃은 5만여명의 병력은 포로로 잡히거나 천지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미군에게서 받은 그 모든 장비와 물자는 중공군에 넘어갔습니다.




▲ 1950년 9·28 서울수복에 이어 10월 평양에 가장 먼저 입성한 유재흥 장군(앉은 이)이 

 육군 2군단장 시절 참모들과 찍은 사진. 그는 51년 7월 시작된 정전회담 때 남한 쪽 

   옵서버로 참관했으나, 일본 육사 출신인 탓에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해 통역을 대동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 전투 이후 한국군에게 남은 건 그가 지휘하지 않은 1군단뿐이었습니다. 밴플리트 장군이 그의 보직을 해임시킨 것은, 이승만이 그에게 1군단마저 맡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실제 이승만은 그를 계속 중용합니다. 군사령관에 이어 3대 합참의장을 맡겼습니다. 이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그를 국방부 장관에 앉혔습니다. 이런 똥별들에게 이 나라의 군을 맡겼으니 그 운명이 어떻겠습니까. 이들은 국토 방위와 대비 태세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와 승진에만 혈안이었습니다. 전선을 지켜야 할 군대를 빼돌려 쿠데타나 일으키고, 민간인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똥별’이어야만 중용됐으니 누구 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문제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었습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 ‘취임 선서’를 아예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이 명한 대통령의 가장 큰 임무 가운데 하나는 평화 통일입니다.


이번에 전시작전권 환수를 또 무기한 연기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밝힌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핵심 군사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고, 하나는 한반도 및 주변 지역의 안보 환경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대통령이 꼭 이루어야 하는 헌법적 책무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이어 이 정부는 한 일이 없습니다. 한반도 안정을 위해서도 한 일이 없고, 대비 태세를 굳건히 한 것도 없습니다. 전시작권권 포기를 통해 스스로 태만과 무능력을 고백했습니다.


한반도 안보 환경을 따져보면 그 무책임은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지금까지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북한을 몰아세우는 데 열중했습니다. 한반도 평화 기반 조성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치 인질범더러 흉기 버리고 손들고 나오라고 떠벌리는 짓만 계속했습니다. 무장을 풀면 바로 체포당할 텐데, 어떤 미친 자가 그런 말에 따르겠습니까. 오히려 인질을 하나둘 희생시킬 뿐이지. 실제 북한은 그사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발전시켰습니다. 체포당하지 않기 위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그것뿐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반도 주변 정세는 악화됐습니다. 주한미군에게 전시작전권을 계속 맡기기 위해 그런 주도면밀한 작전을 썼을까요?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핵심 군사 능력이란 결국 신무기나 장비 조달의 문제입니다. 사실 남북관계가 순항하고 한반도 평화의 기반이 조성된다면 그렇게 압도적으로 북한을 제압할 군사 능력을, 국민경제를 희생시켜가며 갖춰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별들은 북한 국방비보다 33.4배의 국방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면서도,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말대로 ‘미군 엉덩이 뒤에 숨어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만 있었습니다. 하긴 ‘통영함 비리’, ‘홍상어 비리’ 등 온갖 국방 비리와 구타 살인, 총기 난사 등 병영 내부에서부터 일어나는 붕괴 현상을 생각하면, 국방비가 30배가 아니라 100배가 되어도 미군 엉덩이 뒤에서 떨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그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요? 똥별의 책임인가요 아니면 그런 똥별만 중용하는 군 통수권자의 책임일까요. 앞으로는 똥별이 아니라 ‘대똥별’ 혹은 ‘대똥령’이란 말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똥별만 중용하고, 안보 환경은 어지럽히는 대똥별,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그러면서 이 정부가 열심히 지원하는 일은 대북 전단(삐라) 살포입니다. 아마도 전단이 총성 없는 총탄과 폭탄이 되어 북한 정권을 뒤집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총리실, 안전행정부 등 정부가 전단 살포 단체들에 돈을 대줬겠지요. 북한의 총격과 접적 지역 주민들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전단 살포를 방임하고 있겠지요.


도대체 전단으로 체제를 뒤엎을 것이라고 믿는 이 정권이, 전단에 무너질 정도로 허약한 북한 정권 앞에서, 전시작전권 행사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북한에 살포하는 전단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심각한 위협임에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고, 이 정부를 비판하는 해외 언론의 보도나 우리 국민의 전단은 현행범으로 체포해 처벌하는 것처럼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대똥별이란 말만 생각납니다.


똥별이란 말 싫습니다. 하늘의 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이 말은 없어지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대똥별 혹은 대똥령으로 불리는 것도 싫습니다. 제발 정신 차립시다. 똥과 된장은 구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