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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귀영 - 아이돌 대통령의 비극

irene777 2014. 12. 10. 17:38



아이돌 대통령의 비극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한겨레신문  2014년 12월 9일 -




▲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이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견고한 지지율과 막장드라마의 높은 시청률을 비교한 적이 있다. 욕하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 막장드라마의 묘한 중독성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닮았다는 게 요지였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등 온갖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을 보면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세월호 참사 같은 초대형 악재에도 그의 지지율은 견고한 듯 보였다.


전임 대통령들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좀 다르다. 전임 대통령들에 대해서는 왜 지지율이 상승하고 하락하는지, 원인 분석에 관심이 모였다. 박 대통령의 경우는 지지율이 왜 이렇게 높고 견고한지가 주요한 질문이다. 여기에는 높은 지지율이 체감과 다를 뿐만 아니라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문이 숨겨져 있다. 또 다른 차이도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임기가 경과하면서 하락하는 경향이 있는데,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보다 임기 6개월 지지도가 더 높고 1년 지지율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듯하다.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고연령층, 영남, 저소득층 등 약 35% 정도의 충성도 높은 고정 지지층이 떠받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확실한 고정 지지층이 있으니 ‘두 국민 전략’이 가능하다. 자신을 지지한 51%의 ‘좋은 국민’과 나머지 ‘나쁜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좋은 국민에게는 당근을 내놓고, 나쁜 국민에게는 채찍을 휘두르는 전략이다. 항의하는 국민들에게는 민생 프레임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입을 틀어막는다. 그 결과는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즉 대한민국의 분열이다.


최근 여러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가 하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갤럽 정기조사에서는 42%로 하락했다. 39% 수준으로 떨어진 조사도 있다. 이를 본격적인 레임덕의 시작으로 읽는 흐름도 있지만, 이 또한 생채기에 불과할 뿐 곧 복원되리라는 냉담한 시각도 적지 않다.


숲을 보기 위해서는 숲길에서 빠져나와 언덕에 올라서야 하는 법, 그렇게 견고해 보이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큰 흐름을 보면 심상치 않다. 임기 6개월 무렵 60%대에 이른 것을 제외하면 그 이후엔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최근에는 40% 초반에 그치고 있다.


갈라치기 전략을 가능하게 했던 강고한 지지 기반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50대, 부산·울산·경남 지역이 크게 흔들렸다. 또 하나 짚을 대목이 있다. 박 대통령과 비슷하게 35% 안팎의 고정 지지층을 가지고 있던 김대중, 김영삼 시기 모두 임기 3년차에 지지도가 급락하면서 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이들도 집권 2년차까지는 60~70%의 상당히 높은 인기를 누렸다. 누적된 문제들이 곪아 내성이 약해지면서 사소한 외부 자극에도 쉽게 무너진 탓이다.


기춘대원군이 청와대 실세라며 시대가 19세기로 후퇴했다고 탄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알고 보니 실세가 십상시라면 무려 1800년 전 중국의 후한 말로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고 응수하자, 청와대 진돗개가 되겠다던 정윤회의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그 진돗개가 이 진돗개인가, 이 진돗개가 그 진돗개인가, 소란스럽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대형 사고에도 흔들리지 않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지간한 일탈에도 끄떡없는 아이돌의 인기를 닮았다. 아이돌에게 중요한 건 실력보다는 이미지다. 대중은 그 이미지를 소비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박 대통령은 한국 역사상 최고령 아이돌일지도 모른다. 높은 인기를 자랑하던 아이돌이 훅 가는 건 일탈이나 실력 부진이 아니라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스캔들이다. 스스로 아이돌이 된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82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