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와 한국, 정말 달랐던 ‘추모’
- 시사IN 2014년 12월 9일 -
네덜란드는 지난 7월17일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여객기가 추락하면서
자국민 196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었다. 대형 참사 이후에 국가는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나. 네덜란드의 추모 전문가를 만났다.
네덜란드에는 ‘추모 전문가’가 있다. 언론인이자 위트레흐트 대학 겸임교수인 단 베스테링크 씨(46)다. 그녀는 열네 살 때 어머니를 암으로 잃었다. 방송사에서 일하던 서른두 살에 아버지의 죽음도 경험했다. 이후 진로를 바꿨다. 2003년부터 네덜란드 국립추모센터(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국립 재단)에서 일했고, 죽음과 추모를 다룬 책을 두 권 썼다. 지금은 <장례>라는 책 출간을 준비하며 추모와 애도에 관한 강연·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도 한국처럼 대형 참사를 겪었다. 지난 7월1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미사일에 맞아 추락했다. 탑승자 298명 전원이 사망했다. 네덜란드인이 196명으로 가장 많았다. 베스테링크 씨는 네덜란드 정부가 추모 행사를 열 때 자문위원을 했다.
한국의 보수 언론은 네덜란드를 즐겨 인용했다. 8월5일자 <조선일보>는 ‘1분간 묵념 후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라는 기사로 네덜란드 사회를 한국과 대조했다. <동아일보> 7월28일자에는 네덜란드를 거론하며 세월호 유족에게 이성과 냉정을 찾으라는 기고가 실렸다. 한국의 ‘유난한 추모’와 네덜란드의 ‘조용한 추모’를 대조해 세월호에서 벗어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일까. 선진국형 추모와 후진국형 추모가 따로 있는 걸까. 10월30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베스테링크 씨를 만났다.
▲ 11월1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항공기 추락 사고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희생자 추모를 네덜란드 정부가 주도했다. ⓒAFP
한국에는 네덜란드의 ‘조용한 추모’가 더 우월하다는 기류가 일각에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다르게 반응한다. 재난에 대한 반응은 그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더 격정적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내적으로 표현한다. 그뿐이다. 이것은 전혀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네덜란드 정부의 추모 행사에 조언을 했다. 세월호 사고가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다면 정부에 뭐라고 조언했을까?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인정하는 것이다. 나라면 정부에, 그저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인정하는 것이 곧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가 왜 이 일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한다. 가족이 암 때문에 죽었다면,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왜 죽었는지 이유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정부가 “I’m sorry”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I’m sorry”라는 말은 단지 상대방이 겪은 일이 마음 아프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한다고 정부가 모든 걸 책임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난 이후에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첫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를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유족에게 정부가 무엇이든 할 것이고, 유족 곁에 있을 거라고 말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가능한 한 개방적이어야 한다. 설령 진실이 뭔지 모르더라도 유족과 시민에게 최대한 브리핑하려 노력해야 한다. 셋째, 정부의 편의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유족에게 “그건 조사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정부가 정보를 숨긴다고 느낄 것이다. 정부가 두려워하는 순간 사람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 네덜란드의 ‘추모 전문가’ 단 베스테링크 씨. ⓒ시사IN 전혜원
네덜란드 정부라고 유족과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희생자의 시신을 온전히 본국으로 송환하는 데 실패했다. 가족을 추모하고 싶어도 작은 뼛조각만 받아든 유족이 적지 않다. 분노한 유족들은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나 친러시아 반군과 더 적극적으로 협상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월 유가족 10여 명은 “정부가 여객기 추락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는데도 소홀히 대처했다”라며 정부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통점은 더 있다. 네덜란드 정부도 진상 규명과 사후 수습이 미흡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고조사위원회가 9월에 발표한 예비 조사 보고서는 “외부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물체에 격추당했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잠정 결론만 내렸을 뿐 여객기를 공격한 주체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종 조사 결과는 2016년에나 나올 예정이다. 탑승자 298명 중 9명은 여전히 시신을 찾지 못했다.
차이는 그다음부터다. 네덜란드에서 유족은 사고 정보를 언론보다 먼저 안다. 네덜란드 정부는 1차로 유족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베스테링크 씨는 “물론 정부는 무엇을 공개하고 공개하지 않을지 내부 조율을 하지만, 조율된 결과는 공공에 알려지기 전에 가족들이 먼저 듣는다”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는 희생자 추모를 정부가 주도했다. 정부는 사고 6일 만에 시신 40구가 처음 국내에 들어온 7월23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했다.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내외,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유족과 함께 에인트호번 공군기지에 나가 시신을 맞이하는 장면은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추모 묵념 시간이었던 오후 4시부터 1분 동안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항공기와 네덜란드의 모든 열차가 멈춰 섰다.
참사 직후의 모습만도 아니다. 사고 117일째인 11월10일 네덜란드 정부는 또다시 국가적인 추모 행사를 열었다. 전국이 조기를 내걸었다. 각국 희생자의 가족과 친지 1600명 이상이 참석했다. 행사 프로그램에는 유족의 의견과 제안을 적극 반영했다. 유족 세 명이 발언했고 한 명은 시를 읽었다. 희생자 298명의 이름이 불렸고, 촛불 298개가 켜졌다.
일부 유족으로부터 소송 대상으로 몰린 총리는 이날 추도사를 직접 읽었다. 총리는 희생자 이름을 거론하며 “오늘, 이나 크룬은 53세가 됐을 것입니다. 오늘, 산지드 싱은 그의 41세 생일을 축하했을 것입니다. … 그들은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답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들의 기억은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애도했다. 유족과의 갈등 중에도 정부 주도의 애도 원칙은 무너지지 않았다.
한국의 보수 언론은 네덜란드 사례를 ‘조용한 추모’라 부르며 세월호 유족과 대비하곤 했다. 하지만 현지의 추모 전문가가 소개하는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비난과 질책을 받으면서도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위로에 최선을 다하는 정부의 태도야말로 애도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시사IN 전혜원 기자 -
'시사·사회-생각해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 뉴욕타임즈 기자 “세월호 조사 기간 무제한 보장해야” (0) | 2014.12.10 |
---|---|
뭐라도 할게...진상 규명 될 때까지 (0) | 2014.12.10 |
<칼럼> 한귀영 - 아이돌 대통령의 비극 (0) | 2014.12.10 |
<칼럼> 김종대 - 신성화된 권력, 노예가 된 여당 (0) | 2014.12.10 |
<곽병찬 편지> 질 낮은 ‘진돗개 개그’에 배꼽 잡을 때 국민은 한숨만... (0) | 2014.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