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무능한, 그리고 무척 뛰어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 한겨레신문 2014년 12월 11일 -
▲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참 무능하다. 헌법 66조 4항에 따라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여러 가지 다른 역할이 있지만 대통령이 반드시 감당해야만 하는 역할이 바로 행정부의 원활한 운영이다. 행정부 운영의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하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증언에 의하면, 문체부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김종 제2차관에 의해 사실상 ‘점령’당했다. 오죽하면 이를 두고 여당 국회의원이 쿠데타라고 표현했으랴. 책임 장관은 고사하고 이렇게 장관을 핫바지로 만들고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뿐인가. 세월호 참사에다 실패하고 있는 초이노믹스, 그리고 수능시험 관리 부실까지 정부가 감당해야 할 본래적 기능을 넉넉하게 감당하는 데 젬병이다. 이 정도 무능이면 역대 대통령 중 단연 발군이다.
정치인으로서 박 대통령은 무척 뛰어나다. 누가 봐도 이기기 어려운 선거를 승리로 이끈다. ‘선거의 여왕’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선거만 그런 게 아니다. 일상 정치에서도 이른바 프레임을 운영하는 데 탁월하다. 정부의 무능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 세월호 참사도 여야 정쟁의 프레임으로 전환시켜 선거 승리를 이끌어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해서도 그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진영 대결 또는 성패의 논리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근래 대통령으로서는 보기 드문 정치력이다. 행정적으로는 무능하나 정치적으로는 유능한(행무정유) 대통령이 바로 박 대통령이다.
지금 국민을 짜증스럽게 하고 있는 정윤회 파동도 ‘행무정유’ 대통령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앞이 훤히 보인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나 행정관이 사고를 쳤다면, 장관을 지낸 인물이 배신을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사를 잘못한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문체부 국·과장 인사까지 챙긴 대통령이라면 장관은 물론이고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의 인사에 대한 책임도 그의 몫이다. 만약에 세간의 의혹대로 박 대통령도 ‘모르게’ 문고리 3인방과 정윤회가 권력을 사유화했다면 대통령으로선 기가 막힐 일이지만 국민에게는 용서를 구해야 할 무능이다.
정윤회 파동은 야당의 문제제기에 의해 촉발되지 않았다. 언론의 폭로에 의해 시작됐고, 당사자의 증언으로 커졌다. 이 과정에서도 으레 그랬듯 야당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또 하나. 이번 파동의 경우 당사자나 사정을 알 만한 관련자가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발적 폭로를 더 기대하는 건 무리다. 모든 언론이 문고리 3인방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게 부담이긴 하지만 양자 간 제로섬 대치는 아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이 문제를 정치 프레임 또는 진영 대결로 치환할 수 있다면 지금의 소란은 얼마든지 진정될 수 있다. 수순은 이럴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거듭 비선 개입은 사실무근이라고 규정하고, 새누리당이 거든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제는 정리됐으니 민생 살리기, 공무원연금 개혁 등 국정과제에 집중하자고 호소한다. 당사자·관련자의 의미있는 증언이 언론에 의해서나 자발적으로 더 나오지 않고, 야당이 새로운 팩트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해법은 관철될 것이다. 상황 끝!
야당이 아무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목소리를 높여도 그건 정치 프레임에 의해 정략적 공세로 해석될 뿐이다. 시기적으로도 연말연시라 대중적 관심이 떨어지기 쉽고, 긴장감도 이완될 것이다. 안 그래도 지독한 무능의 새정치연합이지만 2월8일 전당대회 때문에 더더욱 여기에 집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복을 타고났다. 우린 또 다시 박 대통령의 ‘행무정유’ 면모, 그보다 더 무능한 야당의 존재를 뼛속 깊이 체감하게 될 것이다. 참 아프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84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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