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마저 외면하고 있는 청와대 “벼랑끝 위기 몰려”
경향 “청부수사가 비극” 중앙 “청와대 발언 삼가야”
조선, “김기춘·3인방 물러나야”
- 미디어오늘 2014년 12월 15일 -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 등 청와대 문건 유출자로 지목됐던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최모 경위가 결백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경위가 남긴 유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 의혹을 제기하자 청와대의 가이드라인 제시 및 수사개입 의혹에 대해 9개 일간지 모두 청와대와 검찰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최 경위는 지난 14일 남긴 유서에서 자신과 함께 문건 유출 의혹을 받은 한모 경위에게 “너무 힘들어 하지 마라. 나는 너를 이해한다”며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민정수석실 회유 의혹은 지난 13일 동아일보가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이날 6면 기사 <崔경위 “靑 ‘유출 인정하면 선처’ 언급”>에서 “11일 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최 경위는 ‘대통령민정수석실에서 파견된 경찰관이 ’혐의를 인정하면 불입건해줄 수 있다‘고 한 경위에게 말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문건 유출과 관련한 청와대의 회유 혹은 강요 의혹은 오아무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한 차례 폭로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1일자 1면 기사에서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1일 조 전 비서관 재임 시절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있던 오모 행정관을 상대로 특별감찰을 하면서 ‘문건의 작성과 유출을 모두 조 전 비서관이 주도했지 않았느냐’며 답변과 진술서 서명을 요구했다고 오 행정관이 10일 말했다”고 전했다.
최 경위의 죽음에 대해 청와대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문건유출’로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검찰이 이에 따라 수사하면서 최 경위가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은 15일자 3면 기사 <청, 가이드라인·‘7인회’·회유 의혹까지…“수사 누가 믿겠나”>에서 “최모 경위가 지난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유서는 청와대 검찰 수사 전반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청와대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해당 문건은 찌라시”라고 규정해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 4월 문건 유출 당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청와대가 수사 언론을 통해 문건 유출 사실이 알려지자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 박지만 EG 회장 측 인사들이 포함된 ‘7인회’의 자작극이라는 감찰 결과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후 검찰은 ‘7인회’와의 연관성 등을 파악하기 위해 박 회장을 소환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검찰이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은 하지만 최 경위가 폭로한 의혹에 대해서는 큰 무게를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15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며 “중간보고를 들은 바로는 회유나 강압수사가 있진 않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
하지만 청와대와 검찰에 대한 언론 보도는 황 장관의 발언과 달리 상당히 싸늘하다. 경향신문은 15일자 사설에서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이는 검찰 수사에 대해 ‘청부수사’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은 지침에 따라 비선 개입이라는 본질보다는 문건 유출이라는 곁가지에 집중했다. ‘청부수사’는 피의자의 사망이라는 비극적 사태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이날 사설에서 “이 과정에서 사태의 본질도 아니고 핵심도 아닌 일선 정보경찰관이 마치 가장 중요한 범법자인 양 부풀려졌고 이것이 최 경위에겐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없다. 정녕 청와대와 검찰은 최 경위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보수언론 역시 청와대와 검찰의 행태를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민정비서관실의 제의’가 무엇이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선 짜맞추기 수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청와대는 이제부터라도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체의 발언을 삼가고 중립적이고 철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최 경위의 사망 이후 서둘러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을 특별대우하며 조사한 검찰의 ‘꼼수’를 꼬집었다. 이 비서관은 검찰과의 사전조율을 통해 취재진이 기다리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검찰 청사로 들어갔다. 동아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청와대는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 사이의 의혹 수사는 물러터졌다는 인상을 준다”면서 “이런(특별) 대우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대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부추길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15일 적극적인 인사쇄신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으로 지목된 이재만 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박 대통령 주변에서 실제 정윤회씨 ·문고리3인방 등 가신 그룹과 박지만 회장 세력 사이에 알력·내분이 벌어졌는지, 각종 인사에 이들이 개입했는지 여부는 검찰 수사와 그 이상의 절차를 거쳐서라도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면서 “새누리당에서까지 국정 농단이란 뒷말이 끊이지 않았던 ‘문고리 3인방’은 물론 청와대 내부 기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퇴진이 쇄신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선일보 15일자 사설
청와대가 이번 의혹에 대해 ‘문건유출’이라고 엄포했음에도 대다수 언론이 호의적이지 않다.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정씨와 박 회장 간의 권력 암투설에 대해 청와대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적인 문건유출만 강조하는 청와대 입장이 선뜻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조차 적극적인 방어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은 박근혜 정권 입장에선 부담이다. 이런 부담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이래 최저인 39.7%를 기록했다. 한겨레는 15일 “청와대가 벼랑 끝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언론은 특검을 통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경향신문은 15일 사설에서 “국회 차원에서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별검사 도입 문제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주장했고, 조선일보는 15일 5면 기사 <정치권은 물론 檢 일각서도 “特檢 가야 하는 것 아니냐”>에서 “최씨 사망으로 문건 유출 혐의를 입증하기로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수사의 결론이 나오더라도 누가 수사 결과를 믿으려 하겠느냐”는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 미디어오늘 조수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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