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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피해자의 사과라니...

irene777 2014. 12. 24. 08:40



‘땅콩회항’ 피해자의 사과라니...


- 시사IN  2014년12월 22일 -




12월16일 종합 일간지와 경제지 등 주요 신문 1면에 대한항공 사과 광고(사진)가 실렸다. “그 어떤 사죄의 말씀도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이다. 업계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이날 대한항공이 집행한 신문광고 액수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수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한항공의 일들로 국민 여러분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드렸습니다.” 사과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과의 주체가 잘못됐다. 최근 발생한 일은 ‘대한항공의 일들’이 아니라 조현아씨가 벌인 일이다. 사주 일가의 ‘황제 경영’과 재벌 3세의 빗나간 행태가 근본 원인이다. 조양호 회장과 조현아씨는 사과문을 발표하는 순간까지 오너의 잘못을 회사와 동일시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보여줬다.





조현아 ‘개인’이 벌인 일탈 행위로 대한항공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됐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오너 자녀의 비뚤어진 행태가 회사 이미지에 얼마나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사과문은 엉뚱하게 마무리됐다. 대한항공은 “다시금 사랑받고 신뢰받는 대한항공이 되도록 환골탈태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새로운 대한항공이 되겠다”라는 다짐도 덧붙였다.


환골탈태 노력은 대한항공이 아니라 조현아씨와 조양호 회장이 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조현아씨의 비상식적 행태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피해자’ 대한항공은 최소 수억원의 광고를 들여 사과문을 게재했고, 새로운 대한항공이 되겠다고 국민들에게 다짐까지 했다. 사고는 사주 일가가 저지르더니 그에 따른 피해 비용과 사과문은 회사가 담당한다. 이번 사과문은 대한항공이 여전히 사주 일가의 ‘황제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사과의 주체도 조현아씨가 되어야 하고, 비용 역시 대한항공이 아니라 조현아씨가 부담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환골탈태의 출발점이다.



- 민동기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