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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말, ‘섬뜩함’ 아니면 ‘유체이탈’

irene777 2014. 12. 28. 04:08



박근혜 말, ‘섬뜩함’ 아니면 ‘유체이탈’


- 진실의길  2014년 12월 26일 -




박근혜 대통령 입에 나오는 말은 이와 같습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등이 담긴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이 터지자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대선 기간 1급 기밀문건인 ‘10·4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때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대화록을 공개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그래픽 출처 <한겨레> 2014.12.04일 자



이전 정부의 외교문서로 비공개가 원칙인 남북대화록 공개에는 ‘알 권리’를 내세우고, 정권의 비선세력 의혹을 청와대 내부에서 제기한 문건에 대해선 언론기관 고소 등으로 ‘알 권리’를 원천봉쇄하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명확하게 ‘정치적 실리’로만 계산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규제 타당성 여부를 조속히 검토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게 될 것”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25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단두대’ 발언이 알려지자 거센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같은 달 26일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단두대, 암 덩어리 등 최근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으면 마치 5·16 쿠데타 직후 한국사회를 연상케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CBS 라디오에 나와 “급기야 단두대 얘기도 나왔는데, 이런 공포스러운 발언들은 일선 공무원들을 상당히 긴장하게 하고 실적주의에 빠지게 해 무분별한 규제완화 등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트위터도 비판 글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가 사용한 ‘단두대’라는 말은 최악의 단어선택이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단두대와 연관된 이미지를 연상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냥 흘려 들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로 인해 불쾌한 기분이 든다.”(@zar*****)

 

“ ‘박물관으로 보내야’ - 노무현, 국보법 철폐를 주문하며. ‘단두대에 올려야’ - 박근혜, 기업규제 철폐를 주문하며. 박물관과 단두대는 문화적 코드가 확실히 다르죠. 단두대가 더 좋은 표현이라 느껴진다면, 그게 당신의 문화적 코드인 겁니다.”(@his******)

 

“박근혜 ‘단두대’ 발언은 통일 ‘대박’처럼 계산된 저렴한 단어 같기는 한데 부정적 의미의 단어라 거부감이 더 클 듯. 더구나 무고한 사람 처형했던 박정희의 딸이 단두대라는 섬뜩한 표현을 저리 쉽게 쓰다니.”(@dit****)

 

문제는 박 대통령 발언이 점점 강도를 더 해 간다는 것입니다. 올해 박 대통령이 한 말 중 거친 말들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거친 표현들.   그래픽 <한겨레>



‘단두대’,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단어 하나가 하나가 섬뜩할 정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말이 가볍다고 얼마나 비판을 많이 했습니까? 그런데 노 대통령은 말이 가벼울 뿐 ‘단두대'’같은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두대가 무엇인지 안 다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단두대(기요틴 guillotine)는 프랑스 혁명이 계속되던 1792년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들보와 두 기둥으로 이루어졌고 사선으로 된 칼날이 잘 내려오게 기둥 안쪽에 홈을 파놓았으며 칼등을 무겁게 만들어 떨어지는 힘을 더욱 강하게 함으로써 엎드린 사형수의 목을 예리하게 자르도록 했습니다.


모든 사형수를 ‘기계를 이용하여’처형할 것을 요구한 법률이 프랑스 외과의사 조제프 이냐스 기요탱(1783년 생트 출생으로 1789년 국민의회 의원이 됨)의 노력으로 통과되었다. 참수형을 더이상 귀족의 특권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가능하면 고통 없는 형집행을 위해 고안한 법안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 처형 모습



이 기계는 비세트르 병원에서 사체를 이용해 만족할 만한 실험을 여러 번 거친 뒤, 1792년 4월 25일 한 노상강도를 사형하기 위해서 ‘그레브 광장’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루이제트(Louisette) 또는 루이종(Louison)이라 불렀으나 곧 기요탱의 이름을 따 ‘라 기요틴’(La guillotine)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프랑스 범죄자들은 여기에 '과부'라는 별명을 붙였다. 프랑스에서는 20세기까지 계속 단두대를 사용하다가 1960년대부터 점점 사라지기 시작해, 1965년부터 1977년 마지막 사용 때까지 8회만 사용했다. 1981년 9월 프랑스는 사형제도를 법으로 금지했고 단두대도 폐기되었다.

 

역사는 로베스피에르와 급진적 혁명 세력들이 너무 많은 생명들을 단두대로 처형한 것과 관련해 공포정치를 폈다고 적고 있다. 히틀러도 1930년대 자신의 정적들을 죽이는데 단두대를 사용했으며 그 숫자만도 무려 2만 명이 넘는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정권은 호치민 세력(공산당)을 뿌리 뽑는다며 단두대로 처형하기도 했다. 프랑스가 마지막으로 단두대를 사용한 때는 1977년이었으며 1981년에 사형제를 폐지했다.


지금은 박물관의 유물로만 전시돼 있는 단두대, 역사에서조차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단두대가 2014년 11월 대한민국의 청와대에서 울려 퍼진 것이다.



<출처 :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565&table=byple_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