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MB마저 당신을 조롱하는군요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93
- 한겨레신문 2015년 2월 3일 -
▲ 곽병찬 대기자
자신을 답습하는 ‘현직’ 공격해 책임 회피하려는 ‘전직’
MB 반대로만 해도 “MB만도 못하다” 소린 안 들을텐데
▲ 2012년 12월28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만나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시 엠비(이명박 전 대통령)는 깃털처럼 가벼운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낸 회고록(<대통령의 시간>)은 책자는 두꺼웠지만, 담긴 내용은 그야말로 새털보다 가벼웠습니다. 내용 중에서 눈에 띄는 건 경륜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조롱입니다. 아무리 한이 맺혀 있어도 그렇지, 퇴임한 지 2년도 안 돼 내놓은 회고록에서 현직 대통령을 그렇게 야유한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MB의 ‘잘난 척’은 당신을 정조준합니다
회고록은 ‘나 잘났다’와 ‘너 때문이야’ 두 종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자기가 쓴 책에서 제 자랑 늘어놓는 것을 나무랄 순 없습니다. 대통령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할 말, 못 할 말이 있습니다. 특히 국가 정상이었다면,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관계, 다른 나라 정상과의 이면 이야기까지 잘난 척했습니다. 그건 후임자에게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전해줘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그 꼴이 마치 ‘까짓거 내가 또 대통령을 하랴’라는 심보 같습니다. 평생 저의 입신출세만을 위해 살아온 자의 모습을 잘 드러냈습니다. 물론 잘한 것을 잘했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그의 재임 기간 중 남·북, 한·중·일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잘난 척은 할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문제 될 만한 것은 왜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책임을 피하려 합니까. 행정수도 이전, 김태호 총리 후보자 인준, 한-미 쇠고기 협상, 4대강 예산 확보 등과 관련해서는 다른 사람, 특히 당신을 정조준했습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경쟁자로 떠오르는 걸 막기 위해 세종시 개정안을 부결시켰다든가,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킨 것도 마찬가지였던 거 아니냐고 의심했습니다. 이른바 ‘친박’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4대강 예산 확보도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한-미 쇠고기 협상은 노무현 탓으로, 그리고 자원외교는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의 구실로 돌렸습니다.
현직으로 있을 때도 국민을 낭패당하게 하더니 나가서도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긴 안에서 깨진 바가지, 밖에서 새지 않을 리 없겠지요.
▲ 2013년 2월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긴급회동이 청와대 백악실에서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권력 생리 달통한 그가 당신을 만만하게 보는 이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처럼 시류와 이해관계에 밝은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력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집권 2년차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가 바로 그였습니다. 문제가 되지도 않을 사안을 침소봉대해 쥐 잡듯이 그를 몰아붙인 끝에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실마리로 삼은 것은 대통령기록물이었습니다. 저는 마음대로 회고록에 담고도, 그에 대해서는 기록물을 사저로 빼돌렸느니 하면서, 퇴임 후 불과 1년도 안 돼 검찰로 소환하기도 했습니다.
현직 시절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그렇게 패륜적인 짓을 했던 그가 어떻게 당신의 코털을 뽑으려 하는 걸까요. 그것도 오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회고록에 문서로 담아 빼도 박도 못하게 했을까요. 속마음이야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한 법조계 인사가 했다는 말은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이제 박 대통령이 만만해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달리 말하면 당신이 오죽 못나 보이면 그렇게 나대겠는가라는 말입니다.
하긴 그의 집권 3년차 국정 수행 지지율은 1분기 긍정 44%에 부정 45%였습니다. 일단 전통적 지지 기반은 확실하게 챙기고 있었습니다. 2분기 49%, 3분기 44%였으니 집토끼에게는 여전히 신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당신은 3년차 초기에 20%대로 주저앉았으니, 그렇게 빈정대기 좋아하는 그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겠죠. “국정 운영에 참고하라고 쓴 것인데~.”
그는 영악합니다. 시류를 잘 읽고 이문을 남기는 데는 귀재입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성공 신화’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건 신뢰를 팔아 챙긴 것이었습니다. 국가 운영의 책임자가 취해선 안 되는 자세였습니다. 그 결과는 집권 4, 5년차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4년차인 2011년 30%대로 떨어지고, 2012년엔 20%대로 추락했으며, 그해 7월엔 10%대를 기록합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느냐고들 손가락질할 때였습니다.
‘반MB’의 초심만 잃지 않아도 이 지경은 아닐 텐데
이제 그런 사람한테도 당신은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최소한 그런 자와는 다른 길을 가자는 게 당신의 다짐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선거 때만 잠시 그런 약속을 남발했다가, 당선된 뒤에는 엠비의 길을 고스란히 답습했습니다. 엠비만도 못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것은 그 결과입니다.
이제 사회갈등 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빈부, 노사, 이념, 지방자치단체, 환경 모든 부문에서 갈등지수가 높아졌습니다. 엠비 정부 시절 고조되기 시작했던 것이 이제 인화점에 근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수기 노릇만 하던 새누리당마저 당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선거에서 보탬은커녕 짐만 될 것 같아 보이자 당 대표는 물론 이제 원내대표도 당신과 맞서는 이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3년 전 무너진 한나라당을 접수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바랍니다. 그때 비상대책위가 회생 대책으로 잡았던 방향은 ‘엠비와는 다르게, 확실히 다르게’였습니다. 사실 그건 가장 간편한 길이었습니다. 중산층·서민·중소기업보다는 부유층·재벌을 위한 정책, 학벌과 교회와 출신지역 우선의 인사, 국가를 수익 모델로 삼고 가족을 국민보다 중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불통과 허세, 무오류의 화신을 자처했던 엠비와는 다른 길만 가면 됐습니다.
실제 그렇게 한 결과 새누리당도 살릴 수 있었고, 전통적 지지 기반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관권의 힘을 끌어들여 당신은 대권까지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당신이 초심만 지켰다면 국민은 당신을 지켰을 겁니다. 무엇보다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의 회고록에서 당신이 찾아야 할 교훈 6가지
물론 엠비는 알고도 거짓말을 했지만, 당신은 누군가 써준 것만 읽다 보니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엠비는 시류와 이문에 따라 자신을 철저하게 통제하지만, 당신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유신 공주’로서 행동하고, 유폐됐던 시절 분노의 감정이 아직도 당신을 지배합니다.
엠비의 회고록에서 교훈을 찾으면 됩니다. 거기에 나타난 엠비는 첫째,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입니다. 국가도 국민도 그의 명성과 이문을 위해 존재합니다. 둘째, 거짓말입니다. 불리한 것은 무조건 둘러댑니다. 셋째, 왜곡입니다. 잘못됐거나 잘못될 우려가 있으면 모두 남 탓입니다. 그리고 잘한 것이 있다면 저의 공이고, 잘한 것이 없으니 잘못도 잘한 것이라고 우깁니다. 넷째, 편협성입니다. 그는 갈대 속보다 좁은 소견머리로 세상을 봅니다. 남북관계를 그렇게 틀어놓고도, 원칙을 지켰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까. 다섯째, 비열합니다. 왜 저로 말미암아 죽어 무덤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책임을 돌립니까. 여섯째, 저열합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잡았다 싶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당신이 그렇게 당하는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 한겨레신문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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