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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상희 - 대통령의 카톡은 안녕하십니까

irene777 2016. 3. 7. 04:06



[정동칼럼]


대통령의 카톡은 안녕하십니까


- 경향신문  2016년 3월 6일 -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절대권력이 돌아왔다. 국내외 정보사항뿐 아니라 범죄 수사, 군과 정부에 대한 정보·수사 활동을 조정·감독하는 권한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었던 중앙정보부(중정)가 이제 ‘극강’의 무장을 하고 되돌아왔다. 국가 안보라는 냉전시대의 유산 따위는 저리 제쳐 두고, 최첨단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모든 것을 국가정보의 틀로 휘몰아가는 테러방지법 덕분이다. 사실 중정의 위력은 군부에서 나왔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정권의 민간 이양이라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 상당 부분을 제2의 군부인 중정에 남겨두었다. 그러기에 중정의 권력은 정보권력이라기보다는 숨겨진 잉여권력이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의 표어는 이를 표상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중정을 완전히 새롭게 업그레이드한다. 음지와 양지 모두에 걸쳐 전방위의 권력을 자가발전해낼 수 있는 창조력을 부여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의 키워드는 테러가 아니다. 방점은 테러위험 인물이라는 불확정 개념에 놓인다. 그것은 가뜩이나 추상적인 테러라는 개념 위에 조직원, 선전, 모금, 기부, 기타 테러 예비·음모·선전·선동, 나아가 이런 행위를 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 등의 애매모호함을 덧씌워 국가정보원에 무한권력을 제공하는 화수분이다. 국정원이 테러라는 이름을 걸기만 하면 어떤 사람에 대해서건 전방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인물을 추적(잠입·정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을 어떠한 감시나 통제로부터도 자유롭게 만들었다. 국무총리 산하에 테러대책본부라는 조직을 두었지만, 실제 권한은 국정원장에게 주어버렸다. 총리와 내각의 통제권은 허울뿐인 테러대책본부에만 그칠 뿐, 국정원장이 막강한 권한을 마음대로 전횡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여기에 국정원특위 등의 사례에서 보듯, 국회의 통제권조차도 그냥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국정원은 최고의 권력이 되었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대통령에 맞서 직권상정하면 성을 바꾸겠다던 국회의장의 맹약을 뒤집게 만든 이가 바로 국정원장이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이것이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정보 혹은 정보기관의 위력이다.


이는 대통령이라 해서 다르지 않을 듯하다. 말씀 받아적기에 급급한 내각과 진박·친박이 공식 용어로 된 국회, 법리보다는 정치가 우선하는 대법원 등으로 점철된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에게 수렴되는 정책 정보들을 비교하고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적 소통의 의지가 결여되고 합리적인 정책능력을 상실해버린 대통령은 오로지 국정원이 상납하는 정보를 통해서만 세상과 관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간첩조작사건이나 댓글사건에서 보듯 자신의 권력을 위해 전방위의 정보 가공능력과 대국민 심리전술능력을 갖춘 국정원이라면 손쉽게 대통령의 권력을 타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인사권으로 국정원을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실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기생하던 시절은 권위주의와 함께 이미 끝났다. 중정은 음지(법의 바깥)에 있었기에 자신의 존립을 뒷받침해줄 또 다른 거대권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현재의 국정원은 테러방지법을 통해 당당하게 양지로 나왔고, 그 자체로 존립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정보권한과 정보능력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돼 경찰이나 검찰 등 정보기관과 더 이상 경쟁하거나 협조를 구해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그뿐 아니다.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단 5년만 재임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짧고 국정원은 영원하다. 이것이 박정희 시대의 중정과는 달리 현재의 국정원이 최고 권력을 누리게 되는 이유다. 국정원의 권력기반은 대통령이지만,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을 대통령으로부터 해방시켜버리는 일종의 반역을 성취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이 공포되자 여당의 의원들이 줄이어 ‘추적’이 곤란한 아이폰이나 텔레그램으로 갈아탄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19개 조문의 테러방지법에다 대통령령으로 위임한다는 규정을 13개나 두었다. 국정원의 권한을 통제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입법권까지 국정원에 맡겨 버린 것이다. 대통령조차도 어쩌지 못하게 될 ‘거대 공룡’ 국정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자기 발등을 찍듯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다 자신까지도 초월하는 절대괴물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어쨌거나 이제 국회의장은 성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대통령의 성은 안전하신가? 아니, 그보다 대통령의 카톡은 -그런 것이 있다면- 안전하신지부터 먼저 물어야 할 듯하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062036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