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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상희 - 개헌도 안단테로

irene777 2016. 6. 29. 17:51



[정동칼럼]


개헌도 안단테로


- 경향신문  2016년 6월 26일 -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대 국회의 시작과 함께 개헌론이 터져 나왔다. 현행 헌법에 대한 세간의 피로감을 감안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현실은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그 헌법이 누구의 것인가라는 점이다. 물론 당장 개헌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특히 정부는 모든 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개헌논의 자체를 거부한다. 하지만, 이 블랙홀론은 정치권력 그것도 중앙권력의 분배에만 집착하기에 가능한 주장이다. 4년 중임의 대통령이냐 의회와 통합되는 내각이냐 등등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현재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권력분포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그러기에 이 개헌론은 의당 이전투구의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된다. 모든 정치의제는 여기에 집중되고 경제는 물론 우리의 일상까지도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식으로 피폐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경험을 겪었다. 현행 헌법이 신군부와 3김으로 대표되는 기성정치인들의 야합으로 만들어졌을 때, 그래서 힘들게 마련한 민주화의 성과조차도 신자유주의를 빙자한 그들만의 권력놀이로 변질되었을 때, 지금 우리에게 강요되는 일상의 고통은 이미 예정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헌에는 국회의장의 멀티 트랙론이 옳다. 개헌을 여러 현안 중의 하나로 놓고 민생과 외교·안보를 챙기면서 차근차근 개헌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조금 확대해석하자면, 지난 30년의 헌정사를 반성하며 향후 30년을 설계하는 새로운 국가비전의 경연장으로 개헌논의를 진행하자는 의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한계를 가진다. 그의 말에서 주어는 언제나 “국회나 정치권”이다. 그의 제안 또한 블랙홀론의 재탕으로 빠져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이 챙기는 것은 그들의 권력일 뿐 우리 모두의 어떤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예컨대, 권력분점을 위한 개헌 운운하지만, 우리 정치를 왜곡시켜 왔던 국정원이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는 검찰은 여기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 혹은 내각제의 취약점인 재벌·대기업과 정치의 유착 가능성은 어찌 통제할 것인지도 아예 귀띔조차도 없다. 너무도 보수화·정치화되어 사법정의조차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는 대법원장·대법관의 임명권은 여전히 대통령이 가지는지 아닌지, 사실상 관변 통신으로 전락한 듯한 공영방송체제는 누가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의 문제는 더더욱 관심조차도 없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들 듯, 이런 세부적인 것들은 개헌을 주도하는 그들이 손쉽게 전리품으로 가공해낼 수 있는 권력의 내용이거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분권만 해도 그렇다. 현행 헌법을 포함한 역대 헌법의 가장 큰 문제점이 대통령에의 과도한 권력집중이며, 분권적 대통령제니 분권적 이원정부제니 하는 지금의 개헌론이 나오는 주된 이유 또한 이에 있다. 그런데 그 분권을 위한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안이 지방분권체제의 구축임은 무시된다. 지방분권체제는 지방이 스스로의 조직을 만들며 독자적인 입법권과 재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모든 국가권력이 중앙에 독점돼 있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혁신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함께 혹은 중앙정부에 우선해 그 지방의 살림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지방정치를 활성화하고 지방자치에 터잡아 중앙권력에 대한 주민들의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지방분권안은 관심의 주변부만 맴돈다. 개헌논의의 주체가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중앙정치인들이기에 그 권력을 지방에 넘겨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개헌은 멀티 트랙으로 해야 한다. 그들이 주도하는 개헌이 아니라 우리가 선도하고 요구하는 개헌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제반의 문제들-세월호, 비정규직, 청년실업, 누리사업, 환경과 탈핵, 방위산업비리, 전관예우 등-은 하나같이 헌법문제로 이어진다. 새 헌법은 이런 우리의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는 기본법이 돼야 한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권력 구조는 바로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고민의 결과로 정리돼야 하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법학교수인 터쉬넷의 말처럼, 헌법을 올바른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정치주체로 나서는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국회의장은 기왕 개헌론을 제기한 참에 우리 모두가 헌법개정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그 다양한 길을 열어두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야 한다. 그리할 때 비로소 “헌법의 눈에서 보면 바로 여기에 장엄함이 깃들게” 되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6203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