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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병규 - ‘고난의 행군’ 선언한 박 대통령?

irene777 2016. 7. 23. 22:31



[세상읽기]


고난의 행군’ 선언한 박 대통령?


- 경향신문  2016년 7월 22일 -





▲ 백병규 

시사평론가



박근혜 대통령이 ‘고난의 행군’을 선언했다. 21일 청와대에서 가진 국가안전보장회의자리에서다. 요즘 자신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다고 토로하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는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 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기를 당부했다. 박 대통령의 언사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정치권의 ‘비협조’ ‘배신’을 거론했지만 그것이 ‘비난’과 ‘저항’으로 바뀌었다.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달라”는 당부에선 비장감마저 엿보인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온갖 의혹과 논란으로 위기에 처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키려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럴 만하다. 4·13 총선 과정에서 이른바 ‘진박’의 전횡과 동남권신공항 백지화 등등으로 절대 지지기반이었던 대구·경북의 여론도 이전 같지 않다. 여기에 사드 성주 배치로 대구·경북 민심은 더 흉흉해졌다. 새누리당 또한 윤상현·최경환·현기환 등 친박계의 공천개입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청와대 수문장 격인 우병우 민정수석의 입지마저 위태롭게 되니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위기의식을 그것만으로 보는 것은 일면적일 수 있다. 아직 그 후폭풍을 예단하기 힘든 사드 배치라고 하는 조급한 무리수가 부를 파장에 더 긴장한 것일 수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어쨌든 대체 가능하지만, 사드 배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물릴 수 없는 카드라는 점에서 그 절박성 또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비난이 무섭다고 피해가지 말아야 할 것”이라거나 “사드 배치에 대해 재검토하자는 것까지 몰고 가서는 안된다”고 못 박고 나선 것이 다 그런 심경의 발로일 터이다. 성주에서 연일 사드 철회 촛불집회가 열리고 박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던 바로 그날 2000여명의 성주군민이 상경해 서울역광장에서 사드 철회 집회를 연 것 또한 예사롭지 않다. 성주 군수가 앞장서고 있는 마당에 ‘불순분자’를 가려내고 ‘괴담’을 척결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힘을 받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이른바 ‘미국의 덫’에 걸렸다. 한국의 대통령에게 미국은 항상 잘 챙겨야 하는 맹방이지만, 집권 중 한두 번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버거운 짐 같은 존재이다. 그것을 어떻게 잘 헤쳐 나가느냐가 한국 대통령의 외교력을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과 미국의 협조하에 북한 문제도 잘 풀어나가는 듯했지만 임기 막바지에는 부시 미 대통령의 견제와 무시 속에서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용산기지 이전, 전시작전권 환수,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부시 대통령과 잘 지내려 작정을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덜컥 미국과 쇠고기협정을 체결하면서 집권 초반부터 정권이 뿌리째 흔들리는 정치적 위기를 겪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과도 잘 지내려 노력했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다. 미국의 불편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 전승절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섰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 중앙아시아까지를 포괄하는 동북아 평화구상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협정을 졸속으로 타결한 것은 그 배신의 신호탄 격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사드 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이 오래전부터 미사일방어체계(MD)를 한반도에 구축해야 한다며 든 이유가 바로 그랬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격한 반발은 예고된 것이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한반도의 방어수요를 초과하는 것으로 그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는 거친 반응을 내놓았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북한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까지 군사적 대치관계로 만들어버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피해갔던 외교적 참사다. 그 후과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국가지도자로서는 실격이다. 그래서일까. 온 국민이 애국심으로 일치단결해 사드 배치를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은. 그런데 정치권은 물론 성주군민들까지 반대하고 나서니 박 대통령으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고난의 행군’을 선언하며 배수진을 친 것도 이런 사태의 엄중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은 성주군민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판이다. 그런 판국에 온갖 추문의 청와대 참모까지 감싸고 있으니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보수언론마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22114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