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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주영 - ‘1%’가 사는 법

irene777 2016. 7. 23. 22:59



[기자칼럼]


‘1%’가 사는 법


- 경향신문  2016년 7월 22일 -





▲ 이주영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부(富)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상위 1%’가 되려면 얼마를 가져야 할까.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상위 1%의 평균 자산은 24억3700만원(2013년 기준)이고, 최소 9억9100만원은 돼야 상위 1%에 해당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281만원(2015년 기준), 자영업자의 연평균 소득은 2072만원(2013년 기준)이다. 직장인은 30년, 자영업자는 48년간 수입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상위 1%에 턱걸이로 들어갈 수 있다.


99%의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재산에다 학벌, 사회적 지위까지 두루 갖춘 상위 1%들이 각종 의혹의 주인공으로 활약 중이다. 1000억원대 부동산, 100억원대 주식 대박 등 스케일도 남다르다. 주로 연예인들이 단골로 등장했던 성(性) 스캔들에는 대한민국 최고 부자까지 이름을 올렸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이 연일 실제 상황으로 보도되고 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법조계 고위공직자 중 최고 부자라는 진경준 검사장. 그가 공개한 재산 156억원 가운데 120억원은 넥슨 비상장주식을 팔아 얻은 돈이다. 넥슨은 진 검사장의 ‘친구’인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회장이 창업한 게임회사다. 주식은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김 회장이 준 4억2500만원으로 샀다. 이 돈을 종잣돈으로 진 검사장은 넥슨 비상장주식 1만주를 샀다가 1년 뒤 넥슨에 10억여원을 받고 팔았다. 100%가 넘는 수익률이다. 이후 진 검사장은 다시 넥슨재팬 주식을 샀다. 그런데 이 주식이 ‘때마침’ 일본 증시에 상장하면서 12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친구’는 진 검사장에게 제네시스 승용차도 줬다. 진 검사장과 김 회장은 서울대 86학번 동기로 대학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상위 1%의 세계에선 이 정도 금전은 오가야 우정이라 할 수 있나보다.


재산이 400억원 가까이 되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건설사, 골프장 등을 소유한 재력가 장인을 뒀다. 2008년 장인이 사망한 뒤 부과된 상속세가 1000억원이 넘었는데, 상속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이라 현금이 부족했단다. 이에 장인에게 상속받은 1300억원대 부동산을 매물로 내놨고, 2년간 잘 팔리지 않던 이 땅을 ‘후배’의 친구 회사인 넥슨이 선뜻 사주면서 가산세 등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우 수석의 서울대 법대 2년 후배인 진 검사장은 지난해 승진 당시 넥슨 주식을 88억원어치 갖고 있었지만 인사검증 책임자였던 우 수석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우 수석의 아들은 의무경찰로 군 복무 중인데, 부대 전입 80일 만에 ‘꽃보직’으로 통하는 운전병으로 자리를 옮겼다. 99%들에게는 이런 행운이 한 번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까.


검사들에게 뒤질세라 회장님들도 가세했다. 횡령과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이재현 CJ회장은 손과 발이 굽어 있고, 앙상한 종아리를 찍은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 뒤 재상고를 포기하고 곧바로 형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특별사면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후다. 특사 대상에 포함되려면 형이 확정돼야 하는데, 이 회장은 이번에 재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2년6월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공개한 성매매 의혹 동영상에 등장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얼굴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상위 1%는 이렇게 살고 있었다. 금력에 탐닉하고 천민 자본주의에 압도되고 윤리가 실종된 상류사회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막강한 재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세상을 마음껏 주무르는 1%를 바라보는 99%의 시선은 공분을 넘어 소외, 허탈,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를 기대하는 건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법과 제도가 해결할 문제다.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에게만 엄격한 법은 1%와 99%의 간극을 더욱 벌려놓을 뿐이다.



- 경향신문  이주영 경제부 기자 -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22116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