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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수돌 - 텃밭에서 느낀 ‘사드’의 정치경제학

irene777 2016. 8. 17. 21:35



[세상읽기]


텃밭에서 느낀 ‘사드’의 정치경제학


- 경향신문  2015년 7월 29일 -





▲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해마다 봄이면 주말농장이나 텃밭을 일구려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텃밭의 신선함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평범한 진리에 있다. 속물 경제가 ‘돈 한 푼 던져 놓고 다이아몬드 한 가마니’ 주워 가려는 카지노판임에 비해, 텃밭 경제는 그저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과연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땀 또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땅을 보살피며 흘린 땀은 대체로 풍성한 농작물로 돌아온다. 텃밭의 풍성함은 호박이건 상추건 이웃이나 친구끼리 두루 나눠 먹을 수 있게 함으로써 우애의 공동체를 창조한다.


하지만 여름 장마 무렵부터 텃밭 일구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 풀의 왕성함 앞에 안타깝게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끈질긴 풀을 일일이 뽑아 기어코 농작물을 지켜내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끼니마다 밥상에서 만나는 곡식, 야채, 풋고추, 깻잎, 과일 등은 그런 땀의 결실이다. 흥미롭게도 농작물은 어느 정도 잡초와 섞여 자랄 때 더 튼실하다고 한다. 따지고보면 풀뿌리 또한 흙을 살린다. 맑고 강한 햇볕과 시원한 비, 신선한 바람, 파근파근한 흙과 그 속의 미생물, 이 모두가 사람의 손길과 함께 맛깔스러운 밥상을 만든다. 그래서, 밥상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우주적 협동 그 자체다. 전쟁이 아닌 평화가 텃밭의 풍성함을 보장하고 온 나라 살림살이도 보살핀다.


그런데,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논란은 한반도 전체에 평화가 아니라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킴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초점을 성주군이니 수도권이니 하는 경쟁 논리로 축소·은폐한다. 원래 자본의 지배적 속성은 경쟁을 통한 분할 통치에 있다. 일례로, 전 지구를 지배하는 자본은 미국 자본, 독일 자본, 한국 자본 등으로 경쟁을 시키고, 각국 지도부는 ‘국가경쟁력’ 향상에 매진해 전 민중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한다.


그러나 지구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일등을 하는가, 독일이나 한국이 일등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각국이 ‘일등’을 위해 무한 경쟁하는 상황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야 전 지구를 효과적으로 분할 통치할 수 있으니까. 다만 일등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나라의 구성원들은 좀 더 많은 떡고물을, 그것도 고위층 순으로 더 많이 분배받을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경쟁을 내면화, 속물화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가 더 많은 떡고물을 차지하려고 범지구적 경쟁을 벌이는 속물적 행위 자체가 지구 자본주의의 지배력을 영속화한다.


최근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글로벌리즘이 아닌 아메리카니즘이 우리의 신조”라고 한 것도 결국은 ‘미국 일등’ 논리에 불과하다. 영국의 유럽연합 이탈(브렉시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제 세계 각국은 보호무역주의 속에서 낡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고양할 조짐이다.


물론, 자유무역이나 글로벌리즘이 대안이란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보호무역이나 아메리카니즘도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모두에 이로운 제3의 길은 무엇인가?


텃밭의 풍성함이 우애의 공동체를 창조하듯, 각 나라는 식량자급률을 100%로 높이고 ‘인간적 필요’의 충족에 적합할 정도로 자립경제를 이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군사동맹이 아니라 평화협정이 시급하다. 그렇게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열심히 생산해 인간적 필요를 충족하고도 남는 것을 이웃 나라와 고루 나눠 먹는 호혜의 공동체를 창조하면 된다. 이것이 세계 평화의 길이다.


하지만, 현재 세상을 지배하는 정치·경제 논리는 군사적, 정치·경제적 우위를 점한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점’ 논리에 불과하다. 갈수록 세계는 무한 경쟁, 무한 분열되고, 나라마다 장벽이 높아지고 외국인을 배척·차별한다. 제3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는 형국이다.


사드 논란은 단순히 지역별 경쟁 구도가 아니라 바로 이런 전쟁과 평화의 맥락 위에 배치되어야 한다. 사드는 성주군은 물론 이 지구 위 어느 곳에도 배치되어선 안된다.


제발, 우리 모두에게 텃밭의 평화를 보장하라!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사드 자체는 ‘외부 세력’일 뿐이다. 사드야, 그만 지구를 떠나렴!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92024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