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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기형 - ‘더치페이’의 공공성과 언론

irene777 2016. 8. 18. 02:38



[문화비평]


‘더치페이’의 공공성과 언론


- 경향신문  2016년 8월 2일 -





▲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며칠 전 헌재에서 합헌 결정을 받았다. 이 법의 발효를 앞두고, 다시금 사회적으로 상당한 논의와 관점의 차이들이 부상하고 있다. 관련기사를 보던 중, 시선을 끈 한 경제지의 특집은 일련의 ‘징후’들을 시사해준다. 이중 한 기사는 종로와 여의도 쪽 식당을 찾아간 기자에게 한 가게 주인이 “저녁장사는 끝난 거죠. 우리에게는 밥 먹고 살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상인들의 우려와 경제적 여파를 전하는 기사 속에는 이 법의 시행이 몰고 올 ‘태풍’ ‘불안감’ ‘타격’ ‘일자리’ ‘감원’ ‘무책임한 처사’ ‘편법’ 등이 강조된다. 반면에 이 법이 왜 한국 사회에서 고심되기 시작했으며, 어떤 사회적 필요성과 의의가 있는지를 조명하는 작업엔 상대적으로 인색하거나 미온적이다. 당연시되기도 하며 대가를 암암리에 기대하는 유형의, 그간에 문제를 일으켜온 은밀한 관행에 관한 숙고된 자성은 크게 발현되지 않는다.


물론 김영란법에 미온적이거나 비판과 우려를 에둘러 전하는 언론의 조명 속에, 이 법의 시행과 관련된 보다 제도적이고 장기적인 보완과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지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앞서 논한 유형의 기사나 칼럼에 투사된 문제의식이 특정한 방향이나 방어적인 의제 전환 등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접기는 어렵다. 특히 기자협회는 언론의 자유와 취재권의 축소와 권력 개입 등을 이유로 이 사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입장을 취한 바 있다.


언론인들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나 관점을 구하기 위해서 꼭 격이 있고 음식의 질이 뛰어난 곳을 가야만 하는 것일까? 취재 대상이 사는 밥을 먹거나 해외 취재 등의 지원을 받는 일이 당연하거나 ‘정상적인’ 취재방식의 연장이기만 한 것일까?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 한 끼 3만원에 달하는 식대나 5만원에 육박하는 선물은 그리 자주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특정 매체들이 이 법의 합헌이 ‘언론 자유의 심대한 침해’일 수 있다고 강조한 특정 사설들 속 문구도 기대되는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다.


“언론인에게 공직자와 같은 잣대를 댐으로써 취재원과 일상적으로 만나 수행해야 할 취재활동에 제약을 준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문장 속에서 취재활동에서 언론 자유 침해로 넘어가는 논리적인 흐름은 거칠고 단선적이며, 궁색해 보이기도 한다. 궁극적이란 단어 속에는 어떤 유형의 구체적인 인과관계나 상호관련성들이 담겨 있는 것일까란 생각도 든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취재관행이나 기자들이 받아온 특혜나 접대와 편의로 매개되는 인맥관리에 걸릴 제동에 관한 불편함이나, 향후 추구해야 할 실천이 주는 부담을 의식한 느낌이 행간에서 배어난다면, 필자가 과잉해독을 한 것일까?


논조를 조금 바꾸어 언론인들이 장기간에 걸쳐 유지해온 ‘출입처 중심주의’의 실행에서 이런저런 편의나 특정한 효과를 염두에 둔 ‘관대한’ 대접을 일부라도 받아왔다면, 이제 그런 관성이나 배태된 이해관계의 부정적 측면을 보다 직시할 필요성은 없는 것일까? 특정 매체들이 전하는 이 법에 대한 비판과 파장에 대한 반복되는 우려를 읽어가다 보면, 향유하던 권리에 대한 상실과 축소를 의식하는 일군의 내부자들이 느끼는 불만과 항변의 배경을 비판적으로 인지하게 해준다.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던 기자협회는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취재하면서 함께 먹는 식사나 만나서 때로는 받게 되는 선물 혹은 청탁 등과 관련해 ‘자기검열’을 한다는 측면을, 언론인의 공적 책무와 균형성을 위한 심화된 성찰과 의지의 발현으로 응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다수 시민들이 이 법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적인 관행의 폐지와 공적 투명성의 신장에 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측면도 헤아려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사회경제적인 약자라고 보기 어려운 상당수 기자 집단이 밥값은 ‘더치페이’하거나, 부담을 줄 수 있는 자리는 거절하며, 비판적이고 가치 있는 기사를 쓰는 쪽으로 관심과 의지를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저널리즘의 실추되고 도전받는 윤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도 이번 법안은 필요한 장치이자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폭염 아래서 작업을 위해 연구실로 향하는 한 필부는 그런 상념에 잠기게 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22053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