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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태훈 - 청와대발 ‘먹방’

irene777 2016. 9. 3. 15:06



[정동칼럼]


청와대발 ‘먹방’


- 경향신문  2016년 8월 25일 -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먹방이 대세다. 어느 개념 없는 고위공직자의 말처럼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 끄고 아무 생각 없이 먹기만 하라는 것인지 모르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외국 언론에 ‘먹방의 나라, 대한민국’이 소개될 정도다.


이제 청와대발 먹방이다. 송로버섯, 샥스핀이 화두다. 접대한 음식이 너무나 고급스럽다. 국민은 폭염에도 전기요금 폭탄이 무서워 무더위를 참고 견디는데 청와대는 호화음식이냐는 비난도 있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샥스핀에 방점을 찍어 동물 복지나 윤리적 측면에서 더 이상 상어 지느러미를 먹으면 안된다는 지적도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민이 흔히 먹을 수 없는 요리들을 대접하고 즐겼다고 해서 평등의 관점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속 좁은 일이고 문제의 본질을 비켜 가는 것이다.


청와대발 궁중 먹방의 문제는 누구는 대접하고 누구는 대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차별했다는 거다. 여당은 불렀지만 야당은 빼고, 여당도 맘에 드는 자기편은 호화판으로 먹이고 맘에 안 드는 여당 의원들은 그저 평범한 중식으로 때웠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바로 불통과 소통의 간극이 숨어 있음을 읽어야 한다.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만 골라 그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대접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불통의 극치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는 안보문제에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가치관과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없다.” 대통령의 말씀이다. 사드 배치가 국가안전보장의 최선이자 유일의 방법이라면 대통령 말씀이 맞다. 그러나 문제는 야당 국회의원이나 대다수 국민들은 사드 배치가 국가안전보장의 최선·유일의 방법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소통이 필요한 지점이지만, 국민들이 무엇을 왜 주장하는지, 야당이 왜 반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니까 새누리당 소속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만 초대해 간담회를 갖고도 소통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떼법’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 떼법 문화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되고, 대외 경쟁력까지 실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급기야는 사드 배치 반대자들에게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시민의 집단적 의사표시를 떼법으로 비하하기 전에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를 살펴보려 애써야 한다.


우병우 사태도 그렇다. 국민은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가련다인 것인지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범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대통령을 모시는 수석비서관의 부도덕성과 부실검증의 책임을 가리키는 이들을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으로 몰아간다. 식물정부를 만들기 위한 음모로 정의하기도 했다. 내치라는 측근은 그대로 두고 쇄신은커녕 불통개각으로 국민을 실망시킨다. 음주운전 단속을 지휘해야 할 경찰 수장 후보자가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고 경찰 신분을 숨겨 내부 징계를 모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야당이 반대했음에도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다. 자격이 안되는 인물을 자리에 앉히면 충성을 기대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정국은 꽉 막힌 체증상황이다. 지난 총선으로 여야의 지형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이전 방식대로다. 협치를 말하면서도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을 꼽았지만 나 몰라라다. 사드 배치로 성주시민과 외부세력을 갈라놓더니 제3지역 이전 가능성을 내비쳐 성주시민 사이도 갈라놓고 김천시민도 삭발하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발 먹방이라고 쓰고 청와대발 ‘먹통’이라 읽어도 좋다. 먹통은 임기 내 고쳐지지 않을 고질로 끝날 모양이다. 아버지의 데자뷰로 인식되지 않으려면 남은 임기 국민 모두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기편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국민도 감싸 안아야 한다.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니까, 소통이 곧 민주주의니까. ‘잃어버린 5년’으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바람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구중궁궐에서 나와 국민의 목소리, 숨소리, 그리고 사람 사는 소리를 듣고 느껴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252037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