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박 대통령의 ‘그날’은 올까
- 경향신문 2016년 8월 29일 -
▲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제재에 대한 강고한 의지와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 붕괴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대북제재가 진행 중이던 지난 4월, 사정거리 30㎞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아 올리더니, 지난 24일에는 사정거리 500㎞ SLBM 발사에 성공했다. 공격무기로서 위력을 가지려면 최소 1~2년은 걸릴 거라고 전망했던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4개월 만에 해냈다.
북한이 SLBM을 발사하기 전, 박 대통령은 주영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망명에 고무라도 된 듯, 8·15 경축사에서 북한 간부와 주민들에게 통일 후 남한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접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22일 을지훈련 국가안보회의(NSC)에서는 “북한 간부들이 동요하고 있고 체제 균열 조짐이 있다”고 진단했다. 1주일 사이 두 번이나 북한 붕괴와 관련해 자신에 찬 발언을 쏟아냈다.
태영호 망명은 1997년 4월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을 떠올리게 한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1990년대 초부터 가능성이 거론됐던 북한 붕괴론이 탄력을 받았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고 그들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선언했다. 식량난, 물자난이 심화되자 북한 주민들이 탈북해 남한으로 왔다.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의 실상이 외부세계에 속속들이 알려졌다. 북한은 더 이상 은둔의 왕국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정립한 권력서열 10위권의 핵심인사가 남한으로 망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 붕괴를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황장엽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버티고 있다. 대통령이 공사급 외교관 정도의 망명을 두고 북한 간부들의 동요, 체제 균열로까지 확대해석하는 건 자아도취적 발상이 아닌지.
이명박 대통령은 ‘비핵·개방·3000’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통일이 임박했다”고 자주 언급했다. 2010년 8·15 경축사에서는 통일세를 거론하기까지 했다. 북한 붕괴론에 뿌리를 둔 일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 붕괴론을 믿는 것 같다. 2014년 1월의 ‘통일대박’, 2013년 말 남재준 국정원장의 ‘2015년 자유민주주의 통일’ 등 북한 붕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들이 나왔다. 올 들어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1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2월 개성공단 폐쇄, 3월 유엔 대북제재 선도, 5~6월 북한 고립외교 전개, 7월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북한 붕괴의 ‘그날’을 앞당기기라도 하려는 듯.
유엔 제재 개시 5개월이 지난 현재, 제재효과는 별로 안 나고 있는 것 같다. 북·중 무역업자들의 말에 따르면 8월 중순 현재 북한 쌀값과 환율이 안정돼 있고, 장마당에는 물건이 많다고 한다. 또한 북·중 접경지역이 낮에는 조용하지만 인공위성 사진이 안 찍히는 밤에는 곳곳이 부산해진다고 한다. 사드 배치 발표 후 북·중 교역이 확장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제재가 장기화되면 주민들의 생활이 좀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북한은 반세기 이상 경제적으로 ‘자력갱생’해온 체제다. 궁핍에 대한 내구력이 크다. 설사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선언하게 되더라도 그 고통은 김정은과 지배층이 아니라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둔 대북제재는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SLBM 발사 후, 안보리가 비난 성명을 내기는 했지만, 북한 내부의 체제 결속력을 오히려 키워줄 것이다. 지난 6월 중순, 정부 내에 퍼져 있다고 보도된 바 있는 ‘금년 8~9월 북한 항복’도 일장춘몽이 될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임기 중 ‘그날’이 올 가능성이 없다면, 그동안 내심 북한 붕괴를 바라며 추진해온 대북정책은 거둬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사드로 인한 정세불안, 북한의 군사위협으로 인한 안보불안을 막을 수 있는 정책으로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2920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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