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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준형 - 막장 안보포퓰리즘과 고삐 풀린 안보 딜레마

irene777 2016. 9. 20. 02:49



[정동칼럼]


막장 안보포퓰리즘과 고삐 풀린 안보 딜레마


- 경향신문  2016년 9월 1일 -





▲ 김준형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국제정치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국제 거버넌스의 빈도와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한 반면 능력과 효용성은 약화됐다. 개별국가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로 인해 만들어졌으나 무기력하다. 그 틈을 강력한 민족주의와 이른바 ‘강자의 시대’가 비집고 들어오며, 트럼프 현상과 브렉시트 같은 극우들이 각광받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빈부격차, 그리고 민주주의의 쇠퇴와 함께 대다수의 국가들이 국내정치를 위한 강경한 대외정책을 표방하면서 안정이, 그리고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동북아정세는 더욱 심각하다. 역내 6개국은 하나같이 국내 권력 강화를 위해 안보포퓰리즘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펼치며 안보딜레마의 소용돌이 속으로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미·중의 패권경쟁과 더불어 북한의 핵개발 강행이 원초적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미·중이 북핵을 놓고 자국의 세력 확대를 정당화하고, 상호간 압박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이를 완충하기는커녕 불을 지르며 덩달아 군비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사드 배치는 본격적인 변곡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결정과정의 비민주성은 물론이고 전략적으로도 전혀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 사드의 효용성이 적다는 비판에 대해 북한의 고각발사에 대비해 사드가 꼭 필요하다고 했던 정부였는데, 서울이 방어망에서 제외되면서 북한이 고각발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시치미를 뗀다. 또 사드의 효용성을 과장하느라 SLBM도 막을 수 있는 무기라고 강변하던 한민구 국방장관이었다. 그런데 이제 북한의 SLBM이 성공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드로도 안 되니 고도 500㎞ 이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SM-3를 이지스함에 설치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핵잠수함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새로운 위협만 나오면 무조건 신무기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버릇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배치를 주장할 때는 안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절대무기’처럼 주장하다가 북한이 다른 무기를 선보이면 배치도 하기 전에 이미 낡고 무용한 무기가 돼버린다. 국방부의 설명대로 SLBM이 2000㎞ 이상 날아간다고 하면, 북한이 바보도 아닌데 구태여 한반도 연안에서 작전을 수행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광활한 먼바다를 핵잠수함 겨우 한 두 척으로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부풀린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이라도 하면 현재 여당에서조차 일고 있는 핵무장론이 전면에 등장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원칙도, 전략도, 상식도 없는 막장 드라마 같다. 박근혜 정부에게 국방 및 대북정책은 이미 전략 차원에서 논의되지 않은 지 오래이며, 이념의 차원으로 다루어져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분석과 대안을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근거 없는 북한붕괴론에 집착하면서 북한문제 해결에 대한 다른 대안을 가진 국내세력은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거친 분노만 내뿜을 뿐 치밀한 전략은 없다. 작년 3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의기양양하게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적 러브콜을 받는 것은 축복”이라며 “고난도 외교사안의 고차방정식을 1·2차원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양쪽으로부터의 러브콜이 아닌 사방으로부터 위협콜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부는 치밀하고 다양한 전략으로 대응하기보다 오히려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근본주의적 애국주의와 종북프레임으로 단순화하고 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스라엘 모델이 최종 목표인 것처럼 강대강의 대결구조에 올인하고 있다.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안보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핵을 보유하고 필요하다면 군사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안보적 관점에서만 보면 대단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은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최소한의 안보를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살고 싶은 모델은 될 수 없지 않은가?


안보 딜레마의 긴장국면이 조성되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 긴장 해소와 평화정착이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안보강화를 하더라도 평화를 향한 노력이 선행되거나, 또는 적어도 병행돼야 한다. 대북 강경책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국내 보수층을 결집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익에는 오히려 독이 된다. 국력 차이가 40배 이상 앞서는 한국이 북한과 치킨게임을 해서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훨씬 더 많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12139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