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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한종 - 대통령의 뜻에만 따르는 정치

irene777 2016. 9. 22. 02:38



[정동칼럼]


대통령의 뜻에만 따르는 정치


- 경향신문  2016년 9월 6일 -





▲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역사교육학과)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에 정상회담이 열렸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첫 회담으로 관심을 모았다. 예상대로 두 나라 정상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논의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 앞에서 한반도의 사드 배치 반대를 명확히 하고 두 나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을 마실 때 근원을 생각하라는 의미의 ‘음수사원’이라는 고사를 들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중국이 도움을 준 우호관계를 상기시키며 압박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두 나라 정상이 박 대통령이 말한 ‘구동화이(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공감대를 확대한다)’와 여러 채널을 통해 건설적이고 포괄적인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또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일부 언론들도 정상회담의 이러한 성과를 부각시켰다.


이런 보도를 본 많은 사람들은 한숨을 돌렸을 수 있다. 우리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발해 경제적 보복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그런 우려가 상당 부분 가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된다.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정상회담으로 중국의 경제적 보복 우려가 사라지거나 한·중관계가 악화되지 않는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뉴스에서 한·중관계는 오로지 대통령 1인에 좌우되는 것처럼 인식된다. 물론 국가 간의 갈등이나 문제들이 정상회담으로 해결되는 일은 종종 있으며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나 사회 현안들이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는 데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대통령의 결단으로 확정됐다. 사드 배치가 적절한지를 둘러싼 정부나 여당 내부의 논란은 그것으로 자취를 감췄다. 성주의 성산포대가 사드 배치의 최적지라고 하다가, 대통령이 제3후보지를 검토하겠다고 하니까 금방 다른 지역을 물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런 현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의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하기로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올해 2월에 단행된 개성공단 폐쇄도 박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해경 해체가 바람직한지는 정부 안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개성공단의 폐쇄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일방적으로 무시됐다. 교육부에서조차 주저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확인되자 학계의 거센 반발과 부정적 여론에 아랑곳없이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다.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한마디로 ‘배신자’가 됐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임명한 특별감찰관은 청와대의 ‘국기문란 행위’ 발언에 졸지에 피의자 신세가 됐다.


이에 반해 특별감찰관의 조사 대상이었던 우병우 민정수석은 갖가지 비리와 의혹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심지어 부동산 비리 의혹 등으로 청문회에서 고개를 숙이던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 후보는 장관에 임명되자마자 ‘흙수저라고 무시를 당했다’면서 ‘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대통령의 신임을 확인한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는 태도다. 통일부, 교육부, 여당, 검찰, 신임 장관까지 누구 할 것 없이 대통령의 눈치만을 보고 문제해결에 나서기보다는 대통령의 뜻을 실천에 옮기는 역할만을 하는 양상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좌우하는 정부는 국민의 여론은 고사하고 집권층이나 행정부 내부의 합리적 의사결정조차 불가능하다. 이는 ‘정치’가 아니라 ‘통치’다. 조선시대 왕조차 신하들과 의논 없이 자기 마음대로 통치를 하지는 않았다. 의정부의 대신들과 의논을 하고, 정책 결정과 집행을 6조의 해당 부서를 통했다. 대통령 혼자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정부는 대통령의 뜻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면 구태여 행정부에 전문가가 있을 필요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본인의 넓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나라의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대통령이 국민 전체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바란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62023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