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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지봉 - 국회의장과 국회의 대정부 견제권

irene777 2016. 9. 21. 09:26



[정동칼럼]


국회의장과 국회의 대정부 견제권


- 경향신문  2016년 9월 4일 -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20대 국회가 시작부터 시끄럽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1일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행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등 민감한 현안들을 비판한 것에 발끈한 여당 의원들이 고함, 국회의장 사무실 점거와 농성으로 나아갔고 약 이틀 동안 국회 운영이 마비되었다가, 정 의장이 사회권을 야당 출신 부의장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가까스로 봉합됐다. 야당 의원 출신 국회의장 시대를 맞아 며칠 새 국민들은 과거에 보지 못한 낯선 광경들을 참 많이 목도했다.


헌법은 국회의장과 관련해 제48조에서 “국회는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선출한다”는 규정 정도를 두고 있다. 그리고 국회법 제15조는 “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의 투표로 당선된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국회의장은 삼권분립 원리 아래 입법부를 대표하는 최고지도자로서 대통령에 이어 권력서열 2위이다.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국회 운영과 관련해 의사일정을 관리하고 의제 설정을 비롯해 입법과정 전반에 걸쳐 총괄적인 권한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회집회공고권, 의사정리권, 사무감독권, 위원회 출석 및 발언권, 특별위원 선임권, 국회에서 가결된 의안의 정부 이송권, 재의결된 법률안의 공포권, 폐회 중 의원사직처리권, 의안을 심사할 위원회의 선택결정권 등과 함께 원내 질서유지를 위한 경호권 발동 등 광범위한 질서유지권도 갖고 있다. 이번에 국회의장과 여당 의원들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소동도 이러한 국회의장의 막강한 권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장은 종래 정치적 실권 없이 형식적 지위만 가지면서 대통령의 의지를 대변하는 대리인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국회의장 후보의 선출과정부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정치적 내정에 따른 하향식 선정이 이루어졌다. 국회법이 국회의장의 무기명투표를 규정해 외형상으로는 국회의원 각자의 자율적 의사에 따라 자유투표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당의 당론에 따라 일괄투표로 국회의장이 선출되었던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정당 내에서의 국회의장 후보 선출과정에서도 당내 경선을 통한 의장 후보 선정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얼굴마담 국회의장’ 혹은 ‘낙하산 국회의장’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여대야소 국회에서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사실상 낙점하는 관행이 계속되던 시절에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러한 국회의장이 이끄는 국회는 ‘행정부의 시녀’로까지 묘사되기도 했다.


이런 과거에 대한 답답한 기억 때문일까? 여당이 이번에 정 의장에 대한 공격의 근거로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여당이 주장하는 정치적 중립성의 국회법상 근거는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날부터 그 직에 있는 동안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 제20조의 2이다.


그런데 바로 이 조항이 국회법에 들어가게 된 배경이 실로 역설적이다. 13대 후반기에 이어 14대 전반기에도 국회의장에 연임된 박준규 당시 의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에 재산 파문으로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그 전의 1987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아닌 노태우 후보를 지지했던 것이 사퇴의 실질적인 원인이었다. 이런 박 의장이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복귀하면서 채문식 전 국회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회운영개선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자문위원회는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탈당이 필요하다는 권고문을 채택했다. 대통령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박준규 의장의 의중이 담긴 권고문이었다. 이것이 후임 국회의장인 이만섭 의장의 임기 중에 조문화된 것이 현행 국회법 제20조의 2이다. 즉 이 조항이 국회법에 들어오게 된 주된 이유는 대통령으로부터의 국회의장의 독립성 확보인데, 역설적으로 지금 여당에서는 이 조항을 대통령의 비소통적 정책 결정을 비판한 정 의장을 공격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가 정부의 정책 집행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대정부 견제권’은 삼권분립 원리가 지향하는 ‘견제를 통한 권력 간 균형’을 이루기 위해 국회가 가지는 핵심적 권한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은 여소야대의 국회를 선택했다. 국회가 죽어가는 ‘대정부 견제권’을 다시 살려내어 국민의 뜻을 잘 수렴해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 독주가 있으면 이를 막아달라는 것이 총선 민심에 나타난 국민들의 요구 중 하나인 것이다. 20대 국회와 국회의장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42049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