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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대엽 - 이정현의 불안과 강박

irene777 2016. 9. 23. 19:25



[정동칼럼]


이정현의 불안과 강박


- 경향신문  2016년 9월 8일 -





▲ 조대엽

고려대 교수 (사회학)



20대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마무리됐다. 추미애 대표나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국정현안 중심 연설에는 무게와 연륜이 감지된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을 더 끈 것은 아무래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연설인 듯하다. 집권당 대표의 연설이기도 했지만 그의 연설에 담긴 거침없는 제안과 포장되지 않은 표현이 주는 호소력도 한몫한 듯하다.


정치인 이정현의 말은 세고 액션은 현란하다. ‘정치대혁명’을 해보자는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국민이 정치혁명 동지가 되어 달라”고도 했다. “안타깝다”는 표현을 반복한다. 호소하고 부탁하고 도와달라는 말도 그냥 하지 않는다. “눈물로” “간곡하게” “화끈하게” “진심으로” “목숨 걸고” 하겠다 하고 또 해달라고 한다. 어떤 동사도 그의 입을 통하면 강력한 갈망의 수사 없이는 표현되는 법이 없다. 다짜고짜 사과하고 반성한다. 참 쉽다. 그런데 그 시원시원한 성품과 넘치는 자신감이 과도한 액션과 거침없는 표현 속에서 오히려 불안하고 불편하다. 아니, 그의 행태와 언변에는 짙은 불안의 그림자가 배어있다.


불안은 대체로 ‘차이’에서 온다. 재해나 테러 같은 위험이 만드는 불안도 있지만, 불안이라는 사회심리적 현상은 대부분 남들과 다르다는 차이에서 온다. 어떤 차이가 여당 대표 이정현을 불안하게 하는가? 이번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남들과 다른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 두 지점이 있다. 첫째는 ‘숙명적 국가주의’다. 그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이미 대한민국 전역에 사격장, 군부대, 미군기지, 군 비행장이 배치돼 있고 그것을 고약한 형제를 이웃에 둔 죄라 했다. 이 나라에 태어난 서글픈 숙명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오직 애국심 하나로 받아들일 것을 호소했다. 사드 배치의 문제를 운명론과 국가주의로 버무려 낸 논리가 단순하고도 섬뜩하다.


이정현 대표가 남들과 다른 두 번째 차이는 강렬한 ‘개인적 책임주의’다. 대표연설에서 그는 국회의 문제를 국회의원 개인의 특권적 행태에 초점을 맞췄다. 공무원과 경제인을 대하는 태도, 대접받기, 심지어는 말투와 걸음걸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국회가 의원 개인의 품격과 태도로 운영되는 듯한 착각이 묻어 있다. 선거제도나 뒤틀린 정당정치와 같은 제도적 문제들이 국회의 합의정치를 방해하는 원천적 문제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 상식을 비켜서 국회의원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참으로 간편한 현실인식이다. 그가 드러낸 개인적 책임주의의 극단은 자신의 성공신화를 세상의 표본으로 삼는 독선에 있다. 호남 출신으로 사상 처음 보수정당의 대표가 된 성공신화를 되새기며 대한민국이 자신에게는 기회의 땅이요, 평등의 땅이며, 평화의 땅이라고 했다. 좌절하고 힘없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그의 뜻과 달리,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니들이 열심히 살지 않아 좌절하고 절망한다’는 개인책임론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이정현의 숙명적 국가주의와 개인적 책임주의는 지금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 뚜렷한 차이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이 차이를 알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래서 거침없는 언변 속에 배인 짙은 불안은 강박적으로 국민을 향해 외치게 한다. 숙명적 국가주의는 공공정책이 국민과의 소통, 해당 주민과의 소통 속에서 자율적이고 설득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시대의 통념으로부터 고립돼 있다.


국회 개혁이 국회의원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국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와 정당권력의 혁신이 핵심이라는 국민 상식과 멀리 떨어져 있다. 또 자신의 성공신화를 만들어준 대한민국이 기회와 평등과 평화의 땅이라는 생각은 청년의 미래가 없고, 오포, 칠포세대가 만연한 ‘헬조선’ 대한민국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집권당의 총선 패배 이후 사드 문제, 일본군 위안부 협상문제, 우병우 사태, 세월호, 조선·해운산업 위기 등은 국가가, 정부가, 집권세력이 책임져야 할 현실들이다. 이 수많은 국가책임의 현실들이 어떻게 숙명적 국가주의와 개인적 책임주의로 설득될 수 있겠는가? 도무지 설득될 수 없는 국가책임의 현실과 집권당 대표의 시대착오적 신념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계곡이야말로 우리 시대 불안의 원천이다. 이정현의 불안은 집권당의 불안이고, 그것은 곧 박근혜 정부의 불안이자 우리 시대의 불안이다. 차이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강박을 낳는다. 강박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회피적 처방이다. 이정현 대표와 집권당과 박근혜 정부의 불안, 나아가 시대의 불안은 강박적이고 회피적 처방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 불안을 없애는 보다 원천적 처방은 국민생각과의 차이, 국민과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82107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