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의혹, 해결 못하면 정권 말까지 갈 것”
언론사 정치부장들 정국진단 “검찰이 청와대 수사할 수 있겠나”
- 미디어오늘 2014년 12월 10일 -
박근혜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 이후 검찰이 ‘정윤회 문건’을 허위보고서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언론사 간부들과 기자들은 검찰의 수사 결과에도 ‘비선실세 국정 농단’ 의혹 후폭풍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을 ‘찌라시’로 규정했다. 검찰 수사도 이 보고서가 ‘전언의 전언’으로 구성된 문건이라며 ‘허위’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검찰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정윤회 문건이 청와대 내 권력 암투에 의해 작성한 허위보고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동아일보는 9일자 3면 기사 <‘들은 얘기’로 만들어진 문건…신빙성 흔들>에서 “‘정윤회 동향’ 문건이 관련자들의 ‘전언’에 상당 부분 의존해 작성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가 드러나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전했다.
▲ 박근혜 대통령
하지만 검찰이 통화내역과 위치추적 등을 통해 문건 내용을 허위라고 판단해도, 수사 결과와 정씨의 국정개입 여부와는 별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검찰 수사는 청와대 행정관 등 8명이 세계일보 보도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대통령 발언 이후 수사의 초점도 정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이 강남중식당에서 회동했는지, 문건 내용의 사실 여부와 문건유출 경위에 맞춰져 있다. 정씨의 국정개입 여부를 밝히는 데서 수사가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 수사로 의혹이 해소될 가능성은 낮다.
한 방송사 검찰 출입 기자는 “검찰 수사의 프레임은 이미 회동 여부와 유출 경위에 맞춰져 있고 민간인의 국정 개입이 불법이라는 법 조항도 없다”면서 “일각에서는 검찰이 왜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수사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원칙적으로도 정치권에서 풀어야 문제이지 검찰이 정치적 사건의 ‘해우소’가 되면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으로 검찰 수사에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방송사 정치부 선임기자는 “실제 문건 유출이 이뤄졌고 문건 내용이 의혹이 많다고 해도, 대통령이 워낙 세게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검찰 입장에서도 대통령 말을 뒤집기가 쉽지 않아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봉근’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향후 검찰 수사에 어떤 영향일 미칠 지도 관심을 모은다. 세계일보는 9일 1면 머리기사 <박동렬, 안봉근 수시로 만나 동향 들어>에서 “세계일보가 지난달 28일 특종보도한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의 일부 내용이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의 발언에 근거해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단독보도했다. 세계일보는 “안 비서관은 박 전 청장과 회동에서 권력 측근 동향에 대해 언급했으며, 정윤회씨와 그를 따르는 비선 모임의 동향에 대해서도 일부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정윤회 문건은 단순한 전언이 아닌 10인 회동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정권 실세의 발언을 바탕으로 작성된 셈이다.
한 경제지 정치부장은 “새로운 팩트가 추가된 것이니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고, 한 방송사의 검찰 출입 기자는 “검찰이 필요하면 안봉근 비서관을 수사할 것이며, 현재 검찰이 수사 대상을 가리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 세계일보 9일자 머리기사
검찰 수사와 별개로 정윤회 문건은 이미 현 정권에 치명타를 가했고, 향후 국정 운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경제지 정치부장은 “어느 정권이나 비공식 조직의 국정개입이 없다고 보진 않지만, 현 정부는 투명성과 토론 구조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공식 조직에 의한 국정개입이 훨씬 더 심각하다”면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나 정권 장악력을 봤을 땐 이번 사건으로 크게 변할 것 같진 않지만,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일간지 정치부장은 “정씨가 장·차관,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에까지 ‘배 놔라 감 놔라’ 할 수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씨가 개인적 민원을 대통령에게 부탁할 수 있는 관계인 건 분명해 보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박 대통령의 기본 지지율이 있으니 35%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여당도 아직까지는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지 않지만 레임덕 여부와 상관없이 국정운영이 꼬일 것이다. 이 의혹이 해결되지 않으면 현 정권 남은 임기 내내 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방송사 정치부장도 “이 사건 자체가 깨끗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 부장은 “국민들은 청와대가 인사시스템과 소통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했다고 보고 있다. 국정지지율도 많이 떨어졌다. 연말 연초 인적쇄신·국정쇄신 요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으니 긴장감이 생길 것”이라 전망했다.
▲ 조선일보 8일자 사설
보수언론에서도 현 정권의 향후 국정운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 사설에서 “대통령이 보기에는 허접스러운 찌라시 수준의 의혹이 어떻게 해서 들불처럼 번져가고 대형 스캔들로 굴러가게 됐는가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9일 사설에서도 “대통령이 먼저 언로를 터주고 아픈 말도 과감히 받아들어야 한다”고 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으로 집권 2년차에 접어든 현 정권에 큰 타격을 주진 않겠지만 균열을 가져온 건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의혹이 제2, 제3의 게이트가 발생할 여지를 열어놨다는 것이다.
- 미디어오늘 조수경기자, 김유리기자, 정철운기자, 강성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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