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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광원 - 헌법재판소, 국민을 향해 쏘다

irene777 2014. 12. 27. 16:40




<김광원 칼럼>


헌법재판소, 국민을 향해 쏘다


- 미디어오늘  2014년 12월 23일 -




▲ 김광원 언론인



법의 지배가 정치적 무기가 될 때 그 총구의 표적은 국민이다. 헌법재판소(헌재)가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통진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20일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결정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장막 뒤 주문(呪文)은 ‘법의 이름’으로 위장된 제단에 앞으로 많은 피의 제물이 올려질 것임을 시사한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당이 사법기관에 의해 해산된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종북’의 탄두를 장착한 이 마법의 총탄이 국민을 뇌수를 가르고, 민주주의 심장을 뚫었으니 이제 거칠 것이 없어진 셈이다. 한 보수언론은 이를 두고 ‘헌법이 대한민국을 지켰다’며 제단 위에 더 많은 피를 요구했다.   


검찰과 경찰은 그 피 냄새를 따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종북’ 공안정국이다. 검찰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결정을 근거로 통진당을 이적단체로 규정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다. 보수단체가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와 모든 당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검찰의 의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이 이 사건을 공안1부에 배당한 것만 보아도 향후의 수사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경찰은 아예 지팡이 대신 몽둥이를 들고 나선 꼴이다. 헌재 결정을 반대하는 집회 주도자들에 대한 처벌을 모색하는가 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의 장경욱 변호사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장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해 북한 인사를 접촉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발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통합진보당에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지난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 노컷뉴스

 


경찰은 또 장 변호사의 포츠담 세미나 참석을 주선하고 북한의 선군정치를 옹호한 혐의로 ‘21세기 코리아 연대’사무실과 회원 9명의 집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장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을 밝혀내고 피의자의 무죄를 이끌어낸 바 있어 경찰의 이와 같은 수사가 ‘종북몰이’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결정의 파장은 이렇듯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을 지키겠다는 헌재의 존재이유를 의심케 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헌재의 해산결정은 그 시기나 내용으로 보아도 매우 의도적이고 자의적으로 보이는 점들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헌재의 해산결정을 정리해보면 그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 헌재의 결정배경에는 헌법이 아닌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논리가 강조되고 있다. 


헌재는 통진당에 대해 주도세력이 북한을 추종하고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폭력에 의해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고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자의적이고 명확한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애당초 헌법에 규정된 정당해산의 근거와는 그 뿌리를 달리한다. 헌재가 법의 이름으로 정치적 목적을 도우려다보니 나오는 무리한 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가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것은 그 법리모순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당해산으로 국회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헌재의 재판관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헌재는 “국회의원직을 그대로 두면 정당해산 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일방적 논리로 국회의원들의 자격상실을 결정했다. ‘법 대신 주먹’이나 다름없는 무법이다. 


오죽해야 창원대 법학과의 최용기 교수는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헌재 재판관 8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청원했겠는가. 최 교수의 법리근거에 관해 헌재 재판관 8명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최 교수가 제시한 10개항의 청원취지는 헌재의 결정이 얼마나 무리수인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 통합진보당 당원 등 시민 2000여명이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수호 국민대회’ 집회에 참가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한마디로 헌재는 국회의원 자격상실을 결정할 권한이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헌법과 현행법으로 국회의원직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제명되거나 선거법 위반에 대한 당선·선거 무효판결에 의해서만 상실된다. 더욱 국회의원 제명처분은 법원에 제소할 수 없도록 해 삼권분립주의를 보장하고 있다. 또 현행 헌법에는 소속 정당이 해산될 때도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이 없다. 현행 선거법은 무소속 국회의원을 인정하기 때문에 정당이 해산된 때에도 의원자격이 상실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회는 헌법 제65조 1항에 의거, 직무집행에 있어서 법률을 위반한 헌재의 박한철 이정미 이진성 김창중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등 8명의 재판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해주기 바란다는 게 최 교수의 청원요지다.


매년 12월이 되면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는다. 올해 뽑힌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廘爲馬)’다. 정적을 숙청하기 위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고, 사슴을 사슴이라 하면 죽임을 당해 진나라의 조정이 두 패로 갈렸다는 얘기다. 기원전 2세기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 시대의 고사라는데 수천 년이 지난 21세기의 우리 사정을 빗댄 것이라니 허망하기 짝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정치개입과 비선 국정농단 등의 의혹에서 시작된 지록위마의 후유증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 박정희 독재정권이 저지른 ‘정치의  사법화’를 오늘의 헌재 결정에서 또 다시 겪어야 하다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