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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태형 - 색깔공포증과 내면화한 파시즘

irene777 2014. 12. 27. 17:04



색깔공포증과 내면화한 파시즘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 민중의소리  2014년 12월 23일 -




2014년을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되어 ‘진보당 강제해산’으로 막을 내린, 한 해였다고 평한다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현 정권은 역사의 시계를 유신독재 시대로 되돌리고 있는데, 이는 한국사회에 파시즘 체제가 부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극우보수세력은 정권위기 때마다 파시즘적 색깔공격을 통해 반대파를 싹쓸이하면서 잔명을 이어왔다. 이들에게 색깔공격은, 컴퓨터의 리셋 버튼과도 같은, 그 어떤 위기상황도 일거에 초기화시켜주는 신의 무기이다. 1950년대에 극우보수세력은 색깔공격으로 조봉암의 진보당을 제거함으로써 한국사회를 리셋했다. 1960년대에도 색깔공격을 활용한 5.16쿠데타, 1980년대에도 색깔공격을 활용한 12.12쿠데타로 한국사회를 리셋했다. 그 결과 한국의 역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민주진보세력의 약진 -> 색깔공격 -> 국가폭력 -> 리셋 -> 암흑기 -> 민주진보세력의 약진 -> 색깔공격…”


2014년은 어땠을까? 현 정권은 위기 때마다 ‘NLL 논란’, ‘내란음모 사건’, ‘종북콘써트 논란’, ‘진보당 해산’과 같은 색깔공격을 통해 반대세력을 진압했다.



파시즘 이데올로기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색깔공격’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이들의 통치수법은 참으로 단순하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는 번번이 이 단순무식한 공격에 맥을 추지 못한 채 과거로 회귀하곤 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작년에 출간된 ‘트라우마 한국사회’에서 그 주원인이 색깔론 공포증에 있음을 논증한 바 있다. 통속적으로 말하면, 색깔론 공포증이란 극우보수세력에 의해 ‘종북’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하는 공포증을 말한다. 비극적인 역사로 인해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색깔론 공포증을 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색깔공격의 광풍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극우보수세력의 칼부림에 부화뇌동하거나 그것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6차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연석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 준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색깔론 공포증의 악영향은 단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색깔론을 동원한 마녀사냥의 반복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게 되었다. 얼마 전 진보당을 해산시키면서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사상의 자유’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면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를 수호해야 하므로 진보당을 해산시키면 안 된다. 즉 진보당의 강령이 무엇이든 그것은 사상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국가가 보호해주어야지 간섭하거나 탄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종북으로 낙인찍히면, 사상의 자유는 얼마든지 금지해도 괜찮다는 다음과 같은 파시즘적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한국은 북이라는 적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상황에 있으므로 사상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


이런 논리가 전형적인 파시즘 이데올로기이다. 파시스트들에게는 항상 적이 있다. 만일 적이 없으면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적을 만들어낸다. 그래야만 사상을 자유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에게는 유대인,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게는 미국이나 영국, 미국의 매카시에게는 구 소련이 적이었다. 역사적 경험은 적이 있어서 파시즘이 필요해진 게 아니라 파시즘이 항상 적을 필요로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상의 자유’를 적이 있으면 금지되어도 괜찮다거나 특수상황이면 제한되어도 괜찮은 권리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파시즘이다. 인류는 체험을 통해서 사상의 자유를 이런저런 이유로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사회발전을 가로막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사상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창시하고 그것을 파괴하려는 파시즘에 대항해 싸워왔다. 어떤 이들은 사상의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면 사회가 엉망진창이 될 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허용된 나라들이 엉망진창이었는지 그것이 금지되었던 나라들이 엉망진창이었는지는 이미 검증이 되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극우보수세력의 파시즘적 논리를 그대로 내면화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적 만행에 과감하게 맞서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진영에도 내면화한 파시즘


한국에서는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지식인조차 누군가가 마녀사냥을 당할 때, ‘종북은 안 돼’라며 같이 돌팔매질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이들 역시 파시스트라고 생각한다. ‘사상의 자유’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주진보세력이 파시즘을 내면화하고 있는 한 파시즘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또한 내면화된 파시즘에서는 그나마 자유롭지만 색깔론 공포증이 심한 정치인이나 지식인 역시 파시즘에 용감히 맞서지 못한다. 이들은 진보당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항상 ‘나는 비록 진보당의 주장에 반대하지만’, ‘나는 비록 진보당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지만’ 따위의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인다. 자신이 진보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꼭 밝히고야 마는 이 괴이한 풍경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이들조차 얼마나 종북몰이를 두려워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영구집권을 위해 파시즘 체제를 복원하려는 극우보수세력의 시도는 2015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를 저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색깔론 공포증과 내면화된 파시즘에서 자유로운 민중의 반파시즘 투쟁에 달려있다. 예전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가 공산주의자라서 그런 말을 했을까? 아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자로서 상식적인 발언을 했을 뿐이다. 이런 상식적인 발언을, 색깔론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비록 나는 공산당에 반대하지만’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말할 수 있는, 노무현과 같은 용감한 정치인이 부쩍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이재화 민변 사법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출처 : http://www.vop.co.kr/A000008293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