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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종대 - 갑질하는 권력이 던지는 메시지

irene777 2015. 1. 8. 06:36



갑질하는 권력이 던지는 메시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한겨레신문  2015년 1월 6일 -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지난해 4월 초에 28사단 의무대에서 윤아무개 일병이 선임의 가혹한 폭력에 노출되었다. 보다못한 이아무개 일병이 윤 일병에게 “네가 사는 길은 개가 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넌 맞아 죽는다”고 했다. 때리면 비통한 반응을 보여야 하고 놀리면 재미있는 반응을 보이는 감성노예가 되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윤 일병은 개가 되지 못했다. 이게 선임의 화를 더 북돋아서 며칠 후 그는 죽음에 이르렀다. 10월 초에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입주민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과일을 던져주며 먹으라 했을 때 강아지처럼 반응할 수 없었던 그는 뻣뻣하게 반응했고, 이것이 입주민의 더 큰 횡포로 연결되어 결국 자살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12월 초에 뉴욕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 기내에서 조현아 부사장이 땅콩 문제로 질책할 때 승무원과 사무장은 “무조건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며 납작 엎드려야 했는데 “매뉴얼에 이렇게 하게 되어 있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다. 이게 조 부사장의 화를 더 북돋아 항공기가 회항하고 사무장이 내리는 대형 사건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우리 사회의 어떤 미생들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엄성 때문에 갑질하는 강자 앞에서도 개가 될 수 없다. 그게 강자를 무시하는 것으로 오인되는 순간 더 큰 참극이 발생한다. 나의 비통함을 향유하려는 강자는 이를 거부하는 개인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실제로 개가 됨으로써 수직 서열화된 위계사회에서 용케도 생존을 도모해나가는 더 많은 미생들도 있다. 이들은 강자에게서 어떤 모욕이나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걸 참고 인내함으로써 언젠가 자신이 강자가 되면 지금 자신과 같은 약자를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고 믿는다. 학교건 군대건 직장이건 학대받고 자란 후임이 선임이 되면 그 고통을 고스란히 후임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이렇게 가해-피해 관계가 계속 순환되면서 고통의 총량을 증가시킨다. 한 인간으로서 인격을 스스로 학살하면서까지 지배와 복종이라는 서열의 구조 속으로 자신을 던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음일 수도 있다. 그런 개인은 제도 밖으로 튕겨나가 생존의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이렇게 적응할 줄 아는 미생들이 적응할 줄 모르는 미생들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증오하고 적대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가 되었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며 약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경향을 보인다. 작년에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가 이런 증오의 표적이었다.


크게는 국가, 작게는 내가 속한 조직이 모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통합되는 걸 통치의 목적으로 삼는 박근혜 정부는 말 잘 듣는 국민과 안 듣는 국민을 구분한다. 말 안 듣는 정당은 해산시키고, 말 안 듣는 개인들은 이메일, 메신저까지 뒤져서 처벌한다. 이런 협박과 처벌이 작동하는 대한민국은 28사단 한 의무대, 또는 대한항공의 확대된 변형이다. 5일 검찰의 정윤회 의혹 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보라. 비선의 국정농단을 척결하는 게 아니라 정권안보의 첨병인 권력의 개가 되는 게 검찰이 사는 길이라는 걸 보여주지 않는가? 국정 농단이라는 핵심 의혹은 “찌라시 수준”이라며 아예 수사도 하지 않고 문건 유출에만 수사력을 집중하여 졸속으로 그 결과를 발표했다. “무시당했다”고 잔뜩 화가 난 ‘각하의 하명 수사’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게 해서 약한 미생들에게 한껏 증오심을 뿜어내는 그런 사회가 2015년 벽두의 대한민국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너 스스로의 존엄성을 포기하라. 살고 싶으면 개가 되라”는 것이다. 이게 박 대통령의 새해 선물이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23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