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김연아)

[스크랩] 주인 찾은 록산느의 탱고 김연아 새로운 피겨를 열다

irene777 2015. 8. 27. 22:28

김연아 선수의 8년간의 시니어 시절 작품들은 하나 하나가 다 고유한 의미와 독특한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이 2007 월드의 록산느의 탱고와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의 죽음의 무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의 작품들은 이미 월드 챔피언이 된 후의 작품들이라서 모두가 "잘 하는 줄 아니까" 라는 시선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이 두 작품은 보통의 관객 뿐 아니라 피겨 관계자들까지도 얼어붙게 만드는 "새로움과 완전함"이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이런 작품을 만나면 이미 피겨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순위도 점수도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래서 내가 피겨를 사랑하는 거야" 라고 되뇌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록산느의 탱고라는 작품 자체를 해부합니다.




2001년의 호주-미국 합작 영화 물랑루즈는 뮤지컬입니다. 레 미제라블이나 시카고 시카고 처럼 많은 노래와 음악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이 록산느의 탱고는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사랑의 3각관계 - 사틴(니콜 키드만), 몬로 백작(리차드 록스버), 작가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 - 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에서 등장합니다. 그 장면 보시죠....


 

First there is desire
Then... passion! 
Then... suspicion! 
Jealousy! Anger! Betrayal! 
Where love is for the highest bidder, 
There can be no trust! 
Without trust, 
There is no love! 
Jealousy.
Yes, jealousy... 
Will drive you... mad! 


이 록산느의 탱고의 가사와 춤은 이 영화에 깔린 여러 사람들의 감정 선을 폭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 모든 것은 부유한 귀족을 유혹해 도움을 얻으려 했던 무희이자 courtesan (보통 고급 창녀라고들 번역하지만 그렇게 막된 직업을 말한다기 보다는 사교계의 자유부인 쯤이 더 맞습니다.이 작품의 무대인 1900년 경 사틴과 비슷하게 댄서 출신으로 왕자와 결혼 후 이혼해 부자가 된 프랑스 여성, 에드워드 7세의 정부로 살아 간 영국 여성, 여러 나라 왕족들과 자유롭게 연애하며 나중에 재벌이 된 여성 등이 있고 이중 간첩으로 잘 알려진 마타 하리도 이 부류 여성으로 분류됩니다. )인 사틴이 작가인 크리스티앙을 자신의 유혹의 목표인 백작이라고 착각하고 유혹한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랑에 빠지고 다만 작품을 해야 하는데 재정 지원은 그 유혹의 대상이자 사틴을 유혹하기를 원하는 백작에게서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지요. 영화 중 뮤지컬 형식으로 보여 주는 그 훌륭한 여러 노래와 춤 중에 이 후반부 절정기로 접어드는 순간의 록산느의 탱고는 모든 긴장의 뇌관 역할을 하는 순간에 이처럼 나오는 음악입니다. 


그런 면에서 단순한 '탱고 곡"은 아니었습니다. 이게 아마 아디오스 노니노와의 차이일 겁니다. 아디오스 노니노는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 그 자체가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이 록산느의 탱고는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서의 여러 사람의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열도 있고 뇌쇄적인 유혹의  몸짓도 있고 삼각관계 하의 질투와 배신, 사랑의 감정이 몽땅 버무려진 곡입니다.


그래서 불과 16살이 표현한다는 게 별로 와 닿지 않을 작품입니다.






따라서 그런 미묘한 감정의 복잡성은 2012 올댓 아이스 쇼 작품이 아마 더 잘 표현되었다 생각합니다. 여기엔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의 춤이 있고 모순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적 bittersweetness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물론 2007년의 이 월드 연기에서 이 복잡다단한, 귀여우면서도 요염한 표정은 이후 오래도록 명장면으로 회자되는데 이 역시 이런 배경을 두고 보시면 사람들이 이 16세에게 홀딱 빠지면서 신음성만 지르게 되는 이유를 짐작하시게 될 것입니다.




실은 록산느의 탱고는 김연아 선수가 2005/06 시즌에 처음 들고 나왔습니다.







 

자 이제 06 김연아와 07 김연아의 비교입니다. 뭐가 달라진 걸까요?


우선 기술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은 3F-2T와 3F-3T의 차이입니다. 헌데 그보다는 PCS에서 25점과 30점..무려 5점의 차이가 납니다.


또한 해설자들도 그렇습니다. 주니어 월드 때도 음악을 잘 탄다 (She is really skating TO the music)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2007 월드의 그녀는 She owns the music 입니다. 2006 주니어 월드 때나 07 월드 때나 안무 자체는 탐 딕슨의 그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헌데 06 때는 '동작을 한다" 고 느껴지는 것이 07 월드 대는 "다음 움직임이 궁금해" 하게 됩니다. 즉, 소위 감정 이입(empathy)이 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 부분은 2006/07 시즌의 그랑프리 시리즈나 파이널 때도 느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즉, 동작 하나 하나가 하나의 흐름(flow) 속에 녹아들어가 있었습니다. 연기라면 이건 메소드 연기라고 해야겠지요. 사틴에게 빙의된 혹은 감정이입된 김연아 선수는 심판들과 관중들을 크리스티앙과 백작으로 놓고 춤으로 딜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해설자도 심판도 열정을 느끼다가 사랑을 느끼다가 질투도 느끼게 됩니다.  

   

결국 관건은 "아프지 않은 몸"이었습니다.


쇼트 후 인터뷰에서 나타났듯이 이 날 아침 아주 오랜만에 "아프지 않은 아침"을 맞았다 했습니다. 그것이 경기 내내 관중과 심판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동작의 강약과 흐름으로 나타납니다.


기술적으로는 요즘은 김연아 선수 이후 많은 선수들이 행하고 있는 점프 착지와 함께 시작되는 트랜지션, 즉 랜딩 후 아웃 스텝 자체가 턴 동작의 시발점이 되는 기술과 점프 자체를 안무의 일부로 표현하는 "흐름의 피겨"가 바로 이 시점에서 이 작품에서 겨우 만 16세의 소녀에게서 나오는 것을 세계의 심판들과 해설가들이 본 것입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2006 올림픽은 신채점제로 치러진 첫 올림픽인지라 구채점제 식의 도입-점프-균형잡기-활주 패턴으로들 경기했고 다만 점프와 스핀의 난이도와 스피드가 이전 경기들과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런 중 실수가 적었던 어라카와가 우승했습니다. 나쁜 연기들은 아니었지만 "감동"은 아닌 "점프 기술 경연대회" 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남자 싱글에서도 그랬지만 기술적 난이도로 경쟁을 하다 보니 선수들이 완전한 클린 경기를 거의 하지 못했고 이는 그 이전 구채점제 경기에서 대체로 클린이지만 동작의 연결성이나 창의성 그리고 난이도 등으로 순위를 판정하던 관중들에게는 별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경기가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급작스럽게 과다한 기술적 요구(실제로 구채점제 때는 스핀이나 스텝들에 제한이 별로 없어 요즘 기준으로는 거의 레벨 1입니다) 때문에 예술성이 급 저하되었다는 비평을 올림픽 후에 많은 (특히) 북미 언론으로부터 받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계는 그렇지 않은 피겨, 예술과 기술이 균형을 이루는 피겨, 스토리를 담으면서도 기술적 요구 사항이 다 들어 맞는 안무와 그 안무를 음악에 딱 맞게 소화하고 그 음악을 쥐락펴락하는 스타성 가진 스케이터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2006 주니어 월드 해설과 2007 월드 해설을 다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2006 주니어 월드 해설자는 김연아 선수를 칭찬하지만 "다음에 뭐가 나올 지 미리 안다"는 듯 자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한두 마디 경기 평을 합니다.


2007 월드 해설자들은 음악 시작후 20초 정도 지나면 점프 종류만 짧게 말하고 관전 모드가 되어 버립니다. 혹은 신음성을 내지릅니다......다만 경기 후 말이 많아집니다. 주로 형용사를 과다하게 사용하면서....


그들에게도 이 피겨. 이 연기는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후 꽤 많은 주니어급 선수들이 록산느의 탱고를 들고 나왓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오히려 남자 선수들이 사용했는데 라이사첵은 아이스 쇼 작품인 것이고 플루쉔코의 2012 유로 우승 경기는 점프의 향연이었을 뿐 해설자들은 음악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또 연기와 스토리 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2015 월드 페어 쇼트 프랑스 조..12위에 그쳤습니다.


결국 2007 월드 이후 이 록산느의 탱고를 성공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든 선수는 아직 없습니다.


현 독일 챔피언 니콜 쇼트는 2010 이후 4시즌, 프랑스의 아나이스 방타드 선수는 2012/13, 2013/14 에 이 록산느의  탱고를 쇼트 프로그램으로 사용(주니어 수준) 했지만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2014 주니어 월드...45.00 점으로 17위에 그칩니다.

** 참고로 이번 시즌 무라카미 카나코와 체코의 미칼 브레지나의 여동생 엘리스카 브레지노바가 쇼트 음악으로 록산느의 탱고를 사용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하면 쉬워 보이지만 다른 선수가 하면 뭔가 잘 되지 않는......

그런 작품이 이 록산느의 탱고입니다. 

동작이 아니라 음악을 알고 흐름을 가져가야 하는 그런 작품.......

점프를 안무의 일부로 보이게 하는 흐름의 피겨....

그 시작은 2007 월드 쇼트 록산느의 탱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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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맑은아찌수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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