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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진원 - ‘김영란법’과 로비스트 양성화

irene777 2016. 10. 20. 16:14



[기고]


‘김영란법’과 로비스트 양성화


- 경향신문  2016년 9월 12일 -





▲ 김진원

미국 오리건주정부 주한대표부 대표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겸임교수



우리나라의 ‘접대문화’는 오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기점으로 확연히 바뀔 것이다. ‘김영란법’이 지향하는 바는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청렴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맑아진다고는 하나 세상 인심이 너무 각박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기야 눈만 뜨면 뇌물수수, 전관예우, 부정청탁 등 하루도 부패와 관련된 소식이 없는 날이 없으니, 대책이 필요하긴 하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해 맨 처음 내세운 것이 부패척결이었다. 그 덕에 현재 일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에 이른다. 이는 뇌물로 인한 사회적 비용보다 투명성에 따른 경제적 효율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선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3만달러 턱밑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로서는 가히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그런데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정작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법은 권력이 있거나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갑질과 횡포를 막는 것이어야지 일반 서민들의 억울한 사정을 전달하는 데 불편을 주자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규정과 처벌만을 강조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파파라치 학원 수강자만 넘쳐나고, 정작 국민의 정당한 청원에 대한 방법이나 청렴사회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청원은 특정 집단 즉, 국회의원이나 선출직 공직자와 시민단체 등만 한다고 하니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법적으로 인준된 그들이 과연 일반 서민들의 청원내용에 대해 얼마나 전문 지식이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전달한다는 말인가? 근래 법률회사에서 정부 공직자들을 모아 놓고 ‘김영란법’ 시행 후를 해설하는 시간에, “아예 누구도 만나지 말고 어떤 부탁도 들어주지 말라”고 조언했다니 한심한 일이다.


이쯤에서 필자는 부정부패의 척결 즉, ‘김영란법’의 효율적 실행을 위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제도화하고 있는 로비제도의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로비제도가 양성화되어 로비스트들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면 특수계층만이 아니라 서민들도 자기 이익을 표출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가 생기는 셈이다.


우리는 ‘어떻게(How)든지 자기에게 이로운 것은 얻고 해로운 것은 피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누가(Who)’ 도움이 될까를 생각한다. 여기서, 이 ‘어떻게’가 넓은 의미의 ‘로비’이며 이들을 떳떳하게 도와주는 ‘누구’가 ‘로비스트’다. 어차피 정책 입안자나 집행자가 모든 일에 통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전문지식이나 자료를 투명·정당한 방법으로 제공해 주면 결정은 그들의 몫이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부정부패는 근절돼야 하지만, 로비제도의 양성화는 되레 힘 있는 자들의 갑질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우리 언론이나 사회가 부당한 거래와 로비를 동일시한 결과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세속적 의미’의 로비는 이미 행해지고 있다. 여의도 국회 주변에 평균 200명 이상의 대관 업무자들, 소위 로비스트들이 상주하고 있다. 기업의 기획조종실, 미래전략실, 지자체의 서울연락사무소 등의 주 업무는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고 자기네에게 유리한 규정을 만들려고 부탁하고 청원한다. 즉 이미 ‘음성로비’는 만연하고 있으며 이들이 바로 부정부패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런 음성로비의 폐해를 근절시키기 위한 로비제도 양성화 법안이 여러 차례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으나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재 규정에 의하면 변호사만이 의뢰인을 대신해서 청원 사항을 소위 법률자문이라는 명목으로 관계기관을 만나 부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조인 출신이 다수인 상임위 의원들이 ‘밥그릇 지키기’ 때문에도 찬성하지 않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로비제도는 1956년 미국수정헌법 제2조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 즉 ‘청원권(The Right of Petition)’을 보장하자는 취지이다. 그 시행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는 의회에 등록하고 제반 활동 즉 의뢰인, 의뢰금액, 경비,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등을 투명하고 세세하게 정기적으로 보고하게 돼 있다. 이를 어겼을 때는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다. 물론 선진국의 규정을 그대로 옮겨오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실정에 맞게 다듬어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청렴사회가 되기 위해서 로비스트의 활동은 양성화돼야 한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122117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