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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쓸만한 그림이라 여겼다”...방송 기자들 ‘기레기’ 반성문

irene777 2015. 1. 8. 07:17



“그때는 쓸만한 그림이라 여겼다”

방송 기자들 ‘기레기’ 반성문


- 한겨레신문  2015년 1월 6일 -





▲ 지난 2014년 4월 16일 객선 세월호(6825t급)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세월호 침몰 당일, 부상자 따라 들어가 마이크 들이댔던 기자들

주삿바늘 꼽는 순간까지 질문…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던 현장

‘취재윤리’는 과열경쟁 중에 혼란과 무질서 속으로 함께 침몰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일. 시신과 부상자들이 들어오던 목포 한국병원 앞은 지상파와 종편의 중계차로 꽉 찼다. 수많은 취재진들이 병원 입구에 진을 치고 세월호 희생자와 부상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상자가 실린 구급차가 도착하면 세워두었던 삼각대가 무색하게 모든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구급차 앞으로 달려들었다. 항상 그렇듯 한 명이 달려들기 시작하면 모두가 달려드는 그런 형태였다. 구급차의 문을 쉽게 열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자리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수많은 카메라기자와 취재기자들은 부상자와 함께 병원 안쪽까지 따라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간호사가 주사기 바늘을 꼽는 순간까지도 취재기자의 질문이 이어졌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던 간호사가 이엔지(ENG) 카메라에 머리를 부딪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너무 과열된 취재에 의사들이 침실 커튼을 쳐도 누군가는 그 사이 틈으로 계속 찍어댔고, 누군가는 안쪽 커튼을 걷어내고 아예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많은 취재진을 받아본 적 없었을 병원의 허술함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듯했다.


아직 정신이 온전해보이지 않는 환자는 침대에 누워 병실로 이동하는 중에서도 계속 인터뷰 요청을 받아야 했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고 오로지 소리쳐 물어보는 사람들만 가득한 상황. 그 부상자가 했던 말들은 거름망 없이 속보로 전해졌다.


“선체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부상자의 말은 소위 ‘좋은 싱크’로 여겨졌고, ‘타사는 찍었는데 우리만 못 찍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취재 윤리를 따질 겨를도 없이 그냥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고 본 것이다.


희생자 빈소에 문이 열리는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질문이 이어졌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유족이 오열을 하며 주저앉으면 곧바로 그 주변을 취재진들이 둘러쌌다.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기다리던 ‘쓸만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다들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경쟁하듯 그림을 잡았다. 빈소 안에 몰래 들어가 유족들에게 몰래 싱크를 따는 종편들도 있었다.


아무런 룰이 없었다. 그저 찍지 못한 사람, 듣지 못한 사람이 패자가 되는 이상한 광경들이 계속 벌어졌다. 카메라를 든 자들은 무조건 찍었고 마이크를 든 자들은 무조건 물었다. 결국 현장에는 카메라와 마이크만 있었을 뿐 ‘취재하지 않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회사에서는 뭐든 가져오라고 했을 것이고, 그들은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할 새도 없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상황을 남들에게 지지 않고 담기 위해 일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영상취재를 하던 한 기자의 글에서 발췌)




▲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극적으로 홀로 구조된 권지연(5)양이 사고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전남 목포한국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SBS 화면 갈무리



세월호 취재 현장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기자들의 ‘취재 윤리’는 과열 경쟁 와중에 혼란과 무질서 속으로 함께 침몰해갔다. 실종자·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여론의 비판이 높았다.


전국 58개 방송사 기자협회 소속 현직 방송기자 2700여명이 모인 단체인 ‘방송기자연합회’는 참사 뒤인 지난해 6월 단체 산하 저널리즘 특별위원회에 ‘재난보도 분과위원회’를 만들었다. 세월호 보도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해보려는 목적에서다.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등 지상파 3사와 보도전문채널 <와이티엔>(YTN)의 현직 취재·영상 기자 등 8명이 모여 9월까지 논의했고, 11월까지 위원회의 편집회의를 거쳤다. 그 결과물이 5일 <세월호 보도...저널리즘의 침몰-재난 보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로 묶여나왔다.


230쪽짜리 보고서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 잘못된 방송 뉴스에 대한 분석과 △영상 취재 현장을 겪은 카메라 기자들의 반성과 개선안에 대한 고민 △현장 취재 기자들의 후기와 반성문 △기자들의 트라우마 문제 등이 담겼다. 이 단체 소속 회원사가 아닌 <티브이조선>, <채널에이>, <제이티비시> 등 일부 종합편성채널(종편)에 대한 평가는 제외됐다.


이들은 세월호 방송 보도의 문제점을 △사실 확인이 부족한 받아쓰기식 보도 △비윤리적·자극적·선정적 보도 △권력 편향적 보도 △본질 희석식 보도 △누락·축소 보도 등 5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사실 확인이 부족한 받아쓰기식 보도의 대표적 사례로는 ‘전원 구조’ 오보가 꼽혔다. 전원 구조 오보의 출처는 지난해 감사원 조사 결과 사실 확인에 기초하지 않은 행정관료들의 보고 내용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일부에서는 안산 단원고등학교와 경기도교육청에서 부모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가 있었고, 세월호 참사가 기자들의 현장 접근이 어려운 해상 사고였다는 점을 들어 ‘어쩔 수 없는 오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고서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이 필요했다고 지적한다. 한국방송의 경우 사고 당일 오전 10시4분부터 세월호 구조 상황을 뉴스 특보 체제로 보도하면서 해양경찰청과 중앙재난본부 등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구조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으며”, “모든 인명의 구조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해군, “탑승객 전원 선박 이탈…구명장비 투척 구조중”” 등을 보도했다.


보고서는 ‘권력 편향적 보도’도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참사의 직접적 책임을 묻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책임선상에서 배제될 순 없는데도 대통령의 ‘이미지’를 위해 실종자·희생자 가족들의 반응이나 입장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누락·축소 보도’ 또한 청와대나 정부·여당에 불리한 내용에 집중돼 있어, 보도 과정의 실수라기보다는 편향적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도 지적했다.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의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 아니다”고 한 발언 파문의 경우, 지상파 3사와 와이티엔 모두 4월23일 발언 당시가 아니라, 한달이 지난 5월22일에 안보실장 경질 때에야 원인으로 한 줄 언급했을 뿐이다.


‘유병언과 구원파’ 보도는 대표적인 ‘본질 희석 보도’로 꼽혔다. 안전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윤 지상주의’, 방만하고 무책임한 관리감독 체계,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구조 매뉴얼, 무능한 정부 기관 간의 불협화음 등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온갖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언론 보도로 인해 특정 종교의 문제처럼 여겨졌다.


보고서는 이런 잘못된 보도가 나간 원인으로 △기자 개개인의 취재 윤리 약화 △정치권력 등 외부 간섭·압력 △방송사 간부들의 권력 편향(내부적 굴종) △기자 집단의 ‘저항 정신’ 실종 등 4가지를 꼽았다. 그리고 ‘세월호 이후에 저널리스트의 자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언론계 5개 단체가 공동으로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이 이름뿐인 사문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지켜지고, 기록되고, 본보기로 남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세월호 참사는 한국 방송언론의 수준과 시청자들의 기대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고로 규정할 수 있다”며 “데스크와 기자들, 선후배 등이 치열한 논쟁을 통해 보도 방향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집단지성’으로 합리적 보도 방향을 찾아야 한다. 기자들의 이런 움직임이 쌓이고 쌓여야 국민과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 한겨레신문  김효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