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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강윤 - 청와대와 ‘땅콩 부사장’

irene777 2015. 1. 9. 22:58



[이강윤의 쓴소리]


청와대와 ‘땅콩 부사장’

봉건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대통령과 재벌


- 미디어오늘  2015년 1월 8일 -




▲ 이강윤

국민TV  ‘이강윤의 오늘’ 앵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무엇을 왜?’ 2014년 8월,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수첩을 들추며, “(문체부) 아무개 아무개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왜 그러는지 좀 살펴보시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공개 확인한 사항이다. 이른바 ‘6하 원칙(5W1H)’은 기사쓰기나 수사기관 조서 등의 기본이다. 특정 사실을 적시하는 ‘팩트’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윤회문건 파문에 대한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예상했던 대로 대통령의 발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검찰발표에 따르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은 자신들의 입지강화를 위해 ‘지라시’ 등을 모아 보고서를 작성했고, ‘삿된 목적’으로 외부로 유출, 언론사에까지 전달됐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로 ‘입지 강화’는 석연찮다는 지적이 검찰 내부에서 조차 흘러나온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어떤 곳인가. 조응천 전 비서관은 검사 출신이다. 뭐가 죄가 되고, 법에 어긋나며, 어떤 점이 처벌받을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박관천 전 경정 역시 경찰 정보통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들이 잠시 파견나와 있을 뿐인 청와대 근무 기간 동안 ‘입지 강화’를 위해서 이런 불법을 서슴지 않았다? 문두에 6하원칙에 입각해서 상황을 간추렸지만, 검찰은 야당 고소사건이기도 한 ‘정윤회씨 측의 문체부 인사개입’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직무유기다. 대통령의 발언이나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제거하고 ‘수사ABC’ 측면에서 보더라도, 검찰의 이번 수사는 평균점수 이하라는 게 한 눈에 드러난다.




▲ 왼쪽부터 정윤회 씨, 박근혜 대통령, 박지만 EG회장   ⓒ연합뉴스

 

 

윤석열 검사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국정원 2012년 대선 개입 의혹사건’의 수사팀장으로 일하다가 검찰 최상층부와 첨예하게 대립한다. 마침내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부딪히다가 직에서 강제 하차당하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로서 국가에 충성한다”는 말을 남기고 표표히 임지처로 내려갔다. 징계가 내려지자 그는 저항했다. 검찰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고 재판정 문을 걸어 잠근 채 젊은 검사가 자기 목을 내걸고 무죄구형을 했다가 징계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임정은검사 항명사건’이다. 최근 끝난 2심에서도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에 대한 징계는 잘못”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임 검사는 지난 해 8월 18일 항소심 결심 최후진술에서 “검사는 상사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검찰과 국가의 권력의지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정의에 대한 의지를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거나 못한 서울중앙지검의 정윤회문건 수사 검사들이나 윤석열-임은정 검사 모두, 겉으로는 다 같은 검사다.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 대한항공 홈페이지, 연합뉴스


 

지난 연말 터진 ‘땅콩 부사장 회항사건’은 재벌가 자식들이 봉건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직원은 물론 승객들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패륜적 행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땅콩 부사장에게 여객기사무장은 항공기 안전-서비스 실무 책임자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부리는 머슴이나 마름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런 봉건적 사고방식과 언행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문건파문이 터지자 “지라시에 불과하고, 문서 유출은 국기문란”이라며 검찰에 엄단을 주문했다. 검찰은 대통령의 ‘말씀’을 수사 절차를 통해 공식화-문서화하는 데 급급했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 역시 검찰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관 쯤으로 여기는 봉건적 사고방식에 머물러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봉건왕조 시절, 고을 수령도 자기 마음대로 송사(訟事)의 성격을 규정하거나 징치하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사헌부 등으로부터 혼쭐나기 십상이었다. ‘땅콩 부사장’이나 대통령이나 봉건적 사고방식에 젖어있기는 매 한가지로 보인다.


검찰 발표 후 청와대는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으로 나라를 뒤흔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누누이 지적됐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이 더 탄력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물안 개구리는 바닥에서 보이는 만큼의 하늘만 하늘로 여기게 마련이다. 우물 벽이 높아질수록 보이는 하늘은 그만큼 작아진다. 더 깊어진 우물의 바닥에 앉아서 아무 것도 보거나 듣지 못한 채 우물벽에 스스로 갇히는 것은 아닐까. 밖을 보지 못하는 개구리는 자기 생각만 키워갈 뿐이다. ‘반면교사’는 사전 속에 갇혔고, ‘역사를 돌아보라’는 금언은 빛바랜 교과서에나 나오는 ‘고리타분한 교훈’이 되어버렸다. 그런 것을 일러 ‘전철(前轍)’이라 한다.



- 이강윤  국민TV ‘이강윤의 오늘’ 앵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