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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찬수 - 가장 신뢰하는 함정

irene777 2015. 1. 15. 16:12



가장 신뢰하는 함정


박찬수 논설위원


- 한겨레신문  2015년 1월 13일 -




▲ 박찬수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은 분명한 사실 하나를 확인시켜줬다. 적어도 박 대통령에겐 비서 3인방이 비서실장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비서 3인방을 교체하라는 요구에 대한 박 대통령의 답은 ‘김 실장은 추후 교체 고려, 그러나 3인방은 임기 중 교체 불가’다. 김기춘 실장이 지난해 국회에서 “대통령께는 저희 비서실도 있지만 또 부속실도 있어서…”라며 비서실과 부속실을 동급에 놓는 걸 보고 참 해괴하다 생각을 했는데, 실상은 비서실보다 부속실이 위에 있었던 셈이다.


이런 상태에선 아무리 청와대 조직개편을 해도 나아질 게 없다. 김기춘 실장도 못한 일인데, 누가 비서실장이 되더라도 3인방을 제어하긴 힘들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눈밖에 나지 않을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중진 의원은 “지금 청와대와 내각에서 요직을 차지한 정치권 인사들은 모두 3인방과 얘기가 ‘잘 되는’ 사람들이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왜 이렇게 비서 3인방을 신뢰하는 걸까. 여권의 다른 중진 인사는 이런 얘기를 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시기였다. 박근혜 후보가 이런 말을 하더란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면 (3인방 중 한 사람인) ○○○ 비서관에게 하세요. ○○○ 비서관은 하나도 보태거나 빼지 않고 틀림없이 저한테 얘기를 전할 겁니다.”


이 말에서 박 대통령이 3인방을 신뢰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말을 보태거나 빼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한다는 믿음이다. 박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이 호가호위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 1970년대 청와대 시절부터, 그리고 10·26 이후 권력에서 밀려난 뒤 사람들에게 느꼈던 감정이 쌓인 결과다. 여기에 3인방은 박 대통령이 보기에 ‘비리 하나 없이’ 깨끗하다. 박 대통령은 “(3인방의) 비리가 없을 거라 믿었지만 이번에 ‘진짜 없구나’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3인방은 그냥 수족이 아니라, 박 대통령 자신의 일부다.


그러나 여기엔 두 가지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우선, 대통령의 믿음처럼 ‘3인방’이라는 통로는 완벽한 걸까? 대통령과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를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박 대통령은 최고의 인재들을 쓰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걸 듣는 많은 이들이 웃어버린다. 3인방에게 기대는 순간, 이 괴리는 필연적이고, 메울 수가 없다. 대통령이 편향된 정보만 듣는다는 평가는 권력 내부에서 더 치명적이다. 내부에서 대통령을 불신하는 순간, 레임덕은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3인방에 대한 공개 신임은 신호탄과 같다. 앞으로 청와대 기능을 불신하는 목소리는 여권 내부에서 먼저 터져나올 것이다.


더 본질적인 건 국정운영의 문제다. 비서 3인방을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하는 박 대통령은 1970년대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래도 핵심 어젠다에 대해선 정부 부처 국·과장의 보고를 직접 받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 내무부 담당관이던 고건 전 총리가 산림녹화 사업과 새마을운동에 관해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직접 브리핑한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 청와대에선 국·과장은 고사하고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이 대통령과 현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는 얘기가 나오질 않는다. 새해 기자회견 내용이 메마른 화장처럼 붕 떠 있는 건 다른 까닭이 아니다. 장관의 대면보고가 너무 적다는 지적에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농담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말 국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불통’보다 더 무서운 평가는 ‘무능’이다.



- 한겨레신문  박찬수 논설위원 -